• [특별기고] 지역 문화예술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 입력날짜 2023-02-22 14:28:53
    • 기사보내기 
1천여 명의 회원, 허락된 공간은 7평이 안 되는 사무실이 전부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영등포구지회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영등포구지회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다 변한다는 말이다. 지난 30년 동안 영등포구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하철 노선도 새로 생겼고, 문래동과 양평동에 있던 큰 공장들은 아파트와 지식산업센터로 바뀌었다.

신길동의 낡은 주택들은 신도시 같은 아파트 숲을 이루었다. 대림동 일대에는 중국 교포들이 터를 잡았고, 구청장과 구의원도 직접 뽑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을 만큼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유독 지역 예술인들의 터전은 변함없이 열악하다. 영등포구에서만 붓을 잡은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영등포구 지역 문화예술의 뿌리는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의 뜻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영등포구 문화예술인협회’가 시초이다. 이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영등포구지회’로 명칭을 바꿔가며, 3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도 문인, 미술, 사진작가, 서예, 국악, 무용 및 연극 총 7개 협회 1천여 명의 회원들이 지역 문화 예술의 맥을 이으며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서예협회도 왕성한 활동을 자랑한다. 38명의 회원 중 17명이 국전(대한민국 미술대전, 대한민국 서예 전람회, 대한민국 서예대전)에 초대작가로 작품을 출품할 만큼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지역을 위한 재능기부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회원들은 바쁜 시간에도 봄꽃축제와 단오제 등 영등포구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직접 가훈을 써 준 주민들이 부지기수다. 구민 휘호대회도 진행을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특히 한국 전통 서예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서예협회전은 23년째 이어오고 있으며, 서예는 물론 지역의 미술과 사진, 문학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목련전은 지난해 26번째 전시를 했다.

반면 이런 오랜 역사와 재능기부에도 불구하고 시설 지원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영등포아트홀이 생기면서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영등포아트홀이 아닌 영등포문화원 3층에 조그만 사무실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몇 년 전 프로그램 강좌에 밀려 자리를 내줘야 했다. 1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지역 문화예술단체에 허락된 공간은 영등포문화원 주방을 개조해 만든 7평이 안 되는 사무실이 전부이다. 비록 열악한 환경이지만 지역 예술의 계보를 잇고 문화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프로그램 강좌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영등포구지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등포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영등포구의 문화환경이 강남, 서초는 물론 인근 자치구보다 못하다는 점이다. 지은 지 50년이 넘은 영등포문화원과 구의회와 독서실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영등포아트홀, 타임스퀘어 지하 2층에 문을 연 반쪽짜리 아트스퀘어가 영등포구가 가진 문화예술 시설의 전부이다.

그러다 보니 협회 사무실은 물론이고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작품 활동을 하고 기량을 뽐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활동할 공간이 없어 신규 회원을 모집하는 것 또한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자칫 그동안 이어온 문화적 전통과 맥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염려되는 지경이다.

더구나 문래동에 둥지를 틀었다 내몰린 젊은 예술가들을 보면 더욱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영등포구의 예술을 더욱 다채롭고 풍부하게 가꾸어 줄 절호의 기회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임대료가 싼 작업실을 찾기 위해 홍대나 신촌에서 활동하던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 문래동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빈 철공소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자 전시실로 하나 둘 바뀌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차가운 철과 뜨거운 예술의 공존이라는 이색 볼거리를 보러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식당과 술집들도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임대료가 오르자 많은 예술가가 문래동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예술가들보다 식당이 많아진 지 오래다.

이러한 가운데 영등포구는 2021년 서울시 자치구 최초로 문화도시에 지정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지역주민으로서 누구보다 진심으로 기뻐했다. 한편으로 지역 문화예술가로서 기대도 컸다. ‘이제는 뭔가 달라지겠지’, ‘문화도시에 걸맞은 사업이나 시설이 생기겠지’라는 희망이 회원들 사이에 가득했다. 그런데 역시 달라진 점은 없었다. 문화도시 사업에서도 30년 동안 영등포구를 지킨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구청장이 바뀌면서 지원금이 늘어나고, 지역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처지에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예계의 명사들이자 국전 초대 작가로 실력 있는 분들이 영등포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을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서울시 자치구 중 유일한 문화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지역문화 예술인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함께 호흡하고 작품 연습을 하며 전시할 공간이다. 공간이 좁아 작품의 규격을 줄이고 출품작 개수를 줄여야 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예술은 원래 가난한 것이다”라며 스스로 위로하는 분들도 없기를 바란다. 연습 공간이 없어 지역주민을 위한 무료 공연을 위해 인근 자치구로 원정 연습을 떠나야 하는 촌극이 더 이상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영등포구지회 서예협회장 이승진 외 회원 일동
<저작권자 ⓒ 영등포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