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무의 화요칼럼] 유럽을 뒤흔드는 분노의 불길과 한국 민생의 경고음
  • 입력날짜 2026-10-27 08:45:30 | 수정날짜 2026-10-27 1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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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곪아 터진 민생의 절망은 극우 포퓰리즘의 기름진 토양”
박무 전 경기콘텐츠진흥원장
박무 전 경기콘텐츠진흥원장
파리의 최루탄 연기가 유럽 대륙 전체를 휘감고 있다. 연금 개혁과 긴축 재정에 맞선 프랑스의 총파업은 시작에 불과했다.

로마와 밀라노의 광장은 치솟는 물가와 복지 축소에 맞선 노동자들로 메워졌고, 아테네 청년들은 무너진 공공 인프라와 청년 실업에 절규하며 거리로 쏟아졌다.

네덜란드의 성난 농민들과 벨기에 브뤼셀의 공공 파업까지, 대륙을 가로지르는 저항의 본질은 정책 시비가 아니다. 벼랑 끝에 몰린 시민들의 처절한 생존 투쟁이다.

이 분노의 뇌관은 통제 불능의 생활비다. 전쟁 발 에너지 쇼크와 고물가는 유럽 시민들의 주거비와 장바구니, 난방비를 사정없이 밀어 올렸다.

대도시의 임대료 폭등과 치솟는 교육비에 중산층마저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사이, 정부는 재정 긴축을 앞세워 공공의 울타리를 걷어냈다. 여기에 실업률마저 치솟으며 미래 세대의 희망은 꺾였다. 일상을 옥죄는 실체적 경제난이 개선될 기미는커녕 갈수록 악화할 것이라는 공포가 시민들을 거리로 내몬 것이다.

곪아 터진 민생의 절망은 극우 포퓰리즘의 기름진 토양이 됐다. 기성 정치가 삶을 지켜주지 못하자 유권자들은 극단적 민족주의와 배타주의로 눈을 돌렸다. 이미 정권을 잡은 이탈리아에 이어, 프랑스와 네덜란드, 벨기에에서도 극우세력이 의회를 집어삼키거나 집권을 눈앞에 뒀고 심지어 독일조차 극우에 잠식 중이다. 관용과 다자 연대를 지탱하던 유럽의 민주주의 축이 무너지면서 국제 질서와 평화마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런데 이 비극은 남의 나라 불구경이 아니다. 고물가와 전월세 불안, 사교육비 폭등에 짓눌린 우리 서민들의 삶도 이미 파열음이 시작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반도체 호황에 힘입은 막대한 세수 확충이라는 천운(天運)에 가까운 완충지대를 쥐고 있다. 이로 인한 재정 여력은 민생의 충격을 흡수할 결정적 방파제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부의 현실은 참담하다. 출범 이후 서민 삶의 구조적 위기를 덜어준 체감 성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천운(天運)으로 얻은 세수를 쏟아붓겠다는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라는 구호만 요란할 뿐, 도시 골목의 늘어난 점포 공실만큼 서민의 실질 소득은 곤두박질쳤다. 장바구니 물가와 특히 주거 안정 대책은 허공을 갈랐다. 당장 오늘을 버티지 못하는 국민에게 내일의 장밋빛 미래를 들이미는 성장론은 공허할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당원과 지지자들 나아가 국민의 염원과 기대를 좌절케 하는 정권과 여당의 자해(自害)가 내부를 장기간 뒤흔들어 왔다. 우선 검찰 개혁의 방향을 놓고 치열하게 수렴해야 할 당내 이견을 건강한 토론과 숙의에 의한 합의로 풀지 않고 묵살과 반발의 평행적 대칭만 지속되게 하였다.

그뿐 아니라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불신과 혐오를 수습하기는커녕, 편 가르기와 적대감을 부추기고 사생결단식 줄 세우기가 횡행했다. 화합과 갈등의 종식 노력은 전무하고 음모론에 더한 ‘반란군 진압’이란 쿠데타 용어까지 동원한, 동지를 친(親)반(反)으로 재단하고 제거에 몰두하는 막장 모양새의, 서민의 고통을 등진 채 자해적 여의도 권력 투쟁에 갇혀버린 오만과 무능이 지금의 지지율 폭락을 자초한 진짜 범인이다.

바닥 민심은 이미 싸늘하게 돌아섰다. 몇 정책의 오류 후유증이 극심한 가운데, 민생 및 개혁과는 거리 있는, 몇몇 성과를 내세워 쉬 넘길 고비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다가올 총선은 물론 국정의 명줄마저 위태롭다. 정부와 여당 지도부는 민심의 냉혹한 경고를 직시하고, 정파적 적대감만 키운 내부의 편협함을 처절하게 반성하고 국정 기조를 송두리째 뜯어고쳐라. 혁신(革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채찍질을 스스로에 우선하여 가차 없이 행해야 한다.

체면이나 자존심을 내세울 겨를이 없다. 더 늦기 전에 절망 속에서도 아직 실낱같은 기대를 거두지 않은 국민 앞에 정권과 여당은 지금까지의 오판을 통절히 반성해야 한다. 그 뼈아픈 성찰 위에 반도체 특수로 쥔 세수를 취약계층의 주거·생계와 교육비 부담을 더는 데 남김없이 쏟아붓는 '민생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 다시 환기한다. 유럽의 광장을 태우는 불길이 이미 우리 문턱을 넘보고 있다.

박무 전 경기콘텐츠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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