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들의 생명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촉구한다!
  • 입력날짜 2023-09-07 15: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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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특보가 발효됐으니...야외활동은 자제해주세요.”
▲이윤진(진보당 영등포구위원장)
▲이윤진(진보당 영등포구위원장)
폭염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 노동 현장의 재난도 불평등하게 찾아온다.

“폭염 특보가 발효됐으니 뙤약볕 아래서 무리한 논밭 일과 야외활동은 자제해주세요.”
올해 여름은 어느 때보다 폭염 특보를 알리는 재난 문자를 자주 받았다. 그러나 재난 문자가 스팸 문자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있다. 야외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들이다. 야외 노동이 생계와 직결되어 있으니 자제할 방법이 없다.

지난 6월 19일 한 대형마트에서 쇼핑카트 관리 업무를 하던 29세 노동자가 일하다 쓰러져 사망했다. 사인은 '폐색전증 및 온열에 의한 과도한 탈수'였다.

고인의 어머니는 인터뷰에서 “아들이 숨지기 이틀 전인 6월 17일 토요일에 집으로 오자마자 대자로 눕더니 “엄마 나 오늘 4만 3천보 걸었어”라며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고인은 하루에 26km 가까이 걸었고 휴게실까지 가려면 걸어서 왕복 10분을 더 걸어야 했다. 폭염 속에서 자신을 지킬 물, 그리고 쉴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

하지만 사측은 빈소에 찾아와 “원래 병 있지, 병 있지”라는 막말로 유족에게 상처를 줬고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낮 최고 기온이 36도까지 올라간 날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퇴근한 형틀 목수의 만보기는 3만보가 넘어가고 있었다. 건설 현장 일이야말로 지붕이 전혀 없는 허허벌판에 서서 기둥을 세우고 층을 쌓아 올리는 일이다.

기온이 높은 날은 휴식 시간을 자주 주지만 10분을 걸어야 에어컨 있는 휴게실까지 갈 수 있어 에어컨을 포기하고 건설자재로 그늘을 만들어 쉬기 일쑤다. 일이 끝난 뒤 작업화를 벗어 뒤집으니 땀이 고여 물처럼 흘렀다. 옷이 얼마나 젖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퇴근길 몸이 천근만근이다.

역시 연일 폭염 특보 문자가 날아오던 날 택배 배송 기사로 일하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어제 일하다 쓰러졌어요. 오늘도 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쓰러졌다고 조퇴할 수도, 결근을 할 수도 없는 일이 택배 일이다. 택배 노동자는 특수고용직이라 자기 구역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을 직접 책임져야 하고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다. 고객들의 민원전화를 배송 기사가 직접 감당해야 하니 배송이 늦어지면 정말 골치 아프다.

특히 여름에는 부패 될 위험이 큰 품목이 많아 배송을 미룰 수가 없다. 새벽부터 나와 부지런히 일해도 밤 9시에 끝나는데 폭염주의보 떴다고 한낮에 일을 멈추고 그늘을 찾아서 들어가면 몇 시에 퇴근할 수 있을지 까마득해 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는 그 지인에게 시원한 물 수시로 마시고 밥도 잘 챙겨 먹으라는 말밖에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실내에서 일하지만, 열사병에 걸리는 이들이 있다.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이다. 무더위 속에서 1,000인분 튀김과 국을 조리하다 보면 고온의 열기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세척기에 식판 1,000개를 넣고 뺄 때는 스팀이 계속 뿜어져 나와 조리실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간다.

비 오듯 땀이 흘러 길고 두꺼운 앞치마 속 겉옷과 속옷은 물론, 면장갑에 토시까지 끼고 고무장갑을 꼈으니 한두 시간 만에 면장갑이 흠뻑 젖는다. 하루 종일 신고 서 있는 장화 속 양말도 마찬가지다.
현기증, 메스꺼움, 다리가 풀리는 것 같은 열사병 증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폭염의 불평등은 노동 현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용노동부는 온열질환 예방 3대 수칙은 ‘물, 그늘, 휴식’이라고 강조하지만, 누군가는 그 폭염을 예방하거나 피할 방법이 없다.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노동자가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져야 할 뿐이다.

노동자의 일터를 안전하게 만들고 건강을 지키는 일을 언제까지 개인에게 맡겨둘 것인가?
폭염과 한파 때론 태풍으로부터 노동자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촉구한다.

이윤진(진보당 영등포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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