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과 텃밭’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 입력날짜 2020-02-25 16: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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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마당과 텃밭이 있는 집’에 사는 사람들과, ‘마당과 텃밭이 없는 집’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향기는 과연 어떻게 하면 다를까?

아는 문인 중에 익숙한 서울 생활을 접고 충청도로 이사 간 사람이 있는데,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래 시골 생활이 어때요?”라고 묻자, 마당과 텃밭 덕분에 자신의 삶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며 봄비처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자기는 처음으로 마당과 텃밭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마당’만 바라보아도 없던 여유가 생긴다고 했다. 빨래도 널고 곡식도 말리고 낙엽도 쓸고 흰 눈도 치우고, 작은 꽃들이 울타리처럼 자라는 것도 지켜보고, 때때로 차 한 잔 들고 온몸으로 햇빛과 바람도 맞고... 또한 작은 ‘텃밭’에 상추·고추·가지·오이 등을 몇 포기씩 심었는데, 수확 철이 되면 혼자 다 먹을 수가 없더란다. 내다 팔기에는 적고 혼자 먹기에는 많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웃과 나누게 되더란다.

이야기를 듣던 누군가가 “그렇게 땀 흘려 가꾼 것을 남에게 그냥 주려면 아깝지 않아요?”라고 묻자, “그게 참 이상하데요. 분명 시간과 정성을 엄청나게 들였으니 아까워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하나도 아깝지 않더라고요. 서울 살 때는 냉장고에 채소와 과일이 썩어도 이웃과 나눌 줄 몰랐는데.” 그도 자기가 의아스러울 정도로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웃집에 상추·고추·가지·오이 등을 나눠주었더니, 그 집에서는 감자·고구마도 가져오고 호박·옥수수도 나눠주더라고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정말 자연스럽게 더불어 나누며 사는 삶을 실천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벼락을 맞은 듯 깨달음이 밀려왔다. “그래, 저것이 이웃 간 정이고 사람 내음 물씬 풍기는 인심인데, 우리 도시인들이 이렇게 각박하고 메마르게 사는 것이 다 마당과 텃밭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구나!”

알고 보면 우리 한국인 모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당과 텃밭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운동장 없는 학교를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마당과 텃밭이 없는 집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산업화 물결에 거의 모든 곳이 도시화 되면서 마당도 텃밭도, 심지어 화단마저 다 사라져갔다. 마당과 텃밭만 사라진 게 아니라 덩달아 마음의 여유와 나누며 더불어 살던 ‘같이의 가치’도 함께 실종된 것이다. 어느새 물기와 온기를 잃어버린 사막처럼 팍팍하게 변해버린 우리네 삶...

옛사람들이 현재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보면 뭐라고 할까? 이것은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벌집’이라며 가엾은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차지 않을까? 물론 바람 좋고 햇볕 좋은 곳에 터를 잡은 전원주택처럼 마당과 정원이 있는 집에 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집 안 화분에 꽃나무 몇 그루라도 심고, 고추·가지 등 채소 몇 포기라도 가꾸며, 잃어버린 여유와 말라버린 정서를 찾아야 할 것이다. 햇볕을 끌어당겨 광합성을 하는 작은 식물들을 키우다 보면 농부의 마음도, 하늘의 마음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려운 사람들은 가끔 넓은 공원과 푸르름이 숨 쉬는 농촌을 찾아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듯 마음의 마당과 텃밭만이라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마당’은 최소한의 여유와 사색의 쉼터이고, ‘텃밭’은 자연의 신비를 일깨워주는 교실이자, 기쁨과 나눔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몇몇 국가들만 아파트가 잘사는 사람들의 공간이지, 유럽 등 나라 대부분은 여전히 마당과 화단, 텃밭 등이 있고 심지어 크고 작은 나무로 푸르게 둘러싸인 집을 여전히 더 선호한다. 사람도 알고 보면 자연의 일부이기에, 아무래도 자연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병든 삶을 살고 자연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건강한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다.

현대인 중 많은 사람이 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없이 인공섬과 같은 도시, 그리고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리고 무엇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사는 이도 많다. 심장과 폐 기능이 좋은 사람이 더욱 튼실한 삶을 영위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자동차처럼 살아가는 도시인들도 가끔은 아무리 바빠도 일손을 잠시 내려놓고 차 한 잔 마시며 청신한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광합성을 하듯 어떤 방식으로든 ‘마음의 마당과 텃밭을 회복하는 일’이 꼭 필요해 보인다.

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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