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산파’를 아시나요?
  • 입력날짜 2020-10-13 12:09:26
    • 기사보내기 
장준하기념사업회에서 함께 활동한 왼쪽부터 본인, 서울대학교 강대중 교수, 이준영 선배, 전국광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수석전문위원 이동영, 국민대 이규일 교수
장준하기념사업회에서 함께 활동한 왼쪽부터 본인, 서울대학교 강대중 교수, 이준영 선배, 전국광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수석전문위원 이동영, 국민대 이규일 교수
이기정(민주당 이동주 의원 비서관)이 이용욱 영등포문화원 사무국장의 추천을 받아 “같이 늙어가며 우리 동네 영등포를 위해 함께 하고 싶은” 장준하 기념사업회 전 사무국장 이준영 선배와의 추억을 소환한다.

이십 년 전 당산역과 영등포구청의 술집과 맛집에서 몇몇 젊은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스스로 당산파라고 이름 짓고 나라를 위하는 걱정 일명 “임꺽정 놀이”를 하며 청춘의 밤을 함께 하였다.

그 중심에는 나와 이준영 선배가 함께하였다. 이준영 국장, 보통 우리가 이준영 선배를 칭하는 직함이다.

나는 이십여 년 전 이준영 국장을 중국으로 출발하는 공항에서 만났다.
그는 사단법인 장준하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나는 대학생 답사단 일원으로 장준하 선생께서 일본군 학도병으로 가서 현지에서 탈출하셔서 임시정부까지 6천리 그 경로를 따라 대륙을 누비는 장준하구국장정 6천리 답사프로그램에 함께하며 그가 30대 내가 20대 초반이었던 이십 년 전인 그때부터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때부터 약 15년간 매년 여름과 겨울 국내의 대학생들 수십 명을 인솔하여 중국에 있는 광복군의 흔적을 찾아 대륙을 누비고 다녔다. 또한, 수많은 날을 그와 함께한 독도 수호 활동,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한여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임진각까지 휴전선 155마일을 도보로 걷기 등, 행사를 끝내고는 어김없이 당산동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런 사이로 발전하였다.
지금까지 그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그때 함께 하였던 많은 젊은이가 지금은 국회의원, 대학교수, 직장인, 평범한 주부로 각계각층 사회 곳곳에서 하나의 등불로 세상을 밝히고 있다.

이준영 선배는 내 젊은 시절 협소했던 시각을 넓혀준 고마운 인연이다.
열렬한 386 운동권이었던 그와 보수 성향의 집안에서 그냥 편히 자라온 내가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같은 동네 사람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40년 넘게 당산동에서 살아왔고 학교 또한 비슷한 지역의 초중고를 나왔다.

운동권 출신이지만 나라와 조국 그리고 후학을 위한 고민을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는 그는 장준하기념사업회의 사무국장과 문화일보를 거치고 최근까지 장준하기념사업회 상임 운영위원, 고려대학교 민주동우회 중심 일원으로 시민 사회운동에 중심에 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중에도 사회의 정의를 위해선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며 장준하기념사업회 운영위원으로서 장준하 선생의 유지를 함께 받들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 했었다.

지금은 그는 기념사업회를 떠나 새로운 인생의 후반기를 준비하고 있고 나는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생활을 하고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건강한 사고와 냉철한 판단력으로 많이 부족한 나를 성숙하도록 다양한 시각을 넓혀준 이준영 형과 앞으로도 같이 늙어가며 우리 동네 영등포를 위해 함께 하고 싶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 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니 바로 전화를 해서 목소리 듣고 오랜만에 당산파를 소집해 만나봐야겠다.
 

이기정 (국회 비서관_더불어민주당 이동주 의원실)
<저작권자 ⓒ 영등포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