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받은 이들의 든든한 진지 ‘꿀잠’ 존폐 위기
  • 입력날짜 2022-03-23 08: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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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노동자의 쉼터이자 상처받은 이들의 든든한 ‘진지’인 ‘꿀잠’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부터 영등포구 신길2구역 재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다.

2017년 8월 개소한 꿀잠은 고 백기완 선생의 붓글씨와 문정현 신부의 서각 전시회를 열어 그 수익금을 건립비에 보태고 종교계·문화예술계·법조계 인사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노동자 등 3천여 명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조성해 지어진 공익적 쉼터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민간인들의 노력으로 지어진 열린 공간이다.

꿀잠은 비정규직·해고 노동자뿐 아니라 산재 사망피해자 가족, 노동·인권·환경 등 공동체를 위한 일하는 활동가들의 쉼터이자 사랑방으로 개소 이후 연인원 1만5천여 명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다.

그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 권리 옹호 단체인 피플퍼스트성북센터나 희망의 노래 꽃다지 같은 작은 시민·사회·문화단체가 활동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고 있으며, 인권운동사랑방과 인권교육센터 ‘들’도 입주해 있다.

꿀잠이 있는 신길동 190번지 일원이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건 2009년이다. 이후 재개발추진위원회 활동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2020년 3월 갑자기 재개발조합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재개발사업이 추진됐다.

이에 시민사회와 노동·종교단체들로 구성된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은 2월 7일 서울 영등포구청에 신길2주택재개발정비사업 정비계획변경(안)에 대한 단체 52곳의 의견서와 개인 5천663명의 연명 의견서를 제출한 후 기자회견을 열고 “꿀잠을 존치해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또 재개발조합과 영등포구청에 ‘꿀잠 공간은 그 자체로 역사적 공간이기 때문에 존치돼야 한다’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꿀잠 측은 “재개발주택정비조합 측이 제출한 안은 35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내용만 있고 공공재인 꿀잠을 보존한다는 내용이 없다”라며 “마을에 사는 세입자들과 아파트에 입주하지 않고 남고 싶은 주민들의 대책 역시 없다”라고 지적했다.

김소연(전 기륭전자 분회장) 꿀잠 운영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꿀잠은 십시일반 모아서 만든 집이고 공사도 직접 했다”며 “조합에서는 존치는 어렵다며 현금청산을 하든, 아파트를 받든 선택을 하라고 하지만 힘들게 마련한 이 공간을 떠나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 운영위원장은 “존치나 이에 준하는 이전 계획을 원한다”라며 “아직 서울시 승인이 나지 않았다. 서울시 코디네이터가 중재에 나서서, 3월 22일 4자 면담(서울시, 영등포구청, 조합 측, 꿀잠)을 한다”라고 말했다.

꿀잠과 꿀잠 대책위는 지난해 11월부터 영등포구청 앞에서 ‘꿀잠’ 지키기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박강열/김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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