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경천-칼럼]결혼할 때 시부모의 경제적 지원 약속, 지키지 않아도 되나
  • 입력날짜 2014-01-21 13: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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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은 부부와 그 가족이 체결하는 포괄적 가족계약
엄경천 변호사
엄경천 변호사
혼인이 가족법상의 계약이라는 것에는 다툼이 없다. ‘당사자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를 혼인무효 사유로 규정한 민법의 규정에 비추어 명백하다.

‘신분에서 계약으로’라는 구호가 잘 말해 주듯이 근대 서구 시민법 체제는 중세 봉건적 신분관계를 계약관계로 발전시켰다.

우리 가족법도 종래 신분관계의 구속에서 점차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계약으로 바뀌고 있고 이와 같은 현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나라의 이혼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고 이혼전문변호사가 지상파 방송뿐만 아니라 케이블 방송과 종합편성채널까지 접수한 상황을 보면 우리 가족법과 가정법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가족법은 일본의 가족법에다가 약간의 우리관습과 서구의 제도를 덧붙여서 만들었고, 그 해석은 일본의 예를 따랐다. 가정법원 역시 이런 입법과 해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가족법 전문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는 “혼인법과 부양법을 우리 현실에 맞게 통일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혼인계약의 내용과 가족간의 권리의무를 명확히 하여 이혼이라는 가족의 해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혼인은 부부와 그 가족이 체결하는 포괄적 가족계약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정씨. 아직 학위를 받지 못하고 직장도 구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혼인이 늦어지는 것을 염려한 정씨의 부모는 아들 결혼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정씨는 선을 통해 만난 김씨에게 첫 눈에 반했고, 정씨는 김씨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정씨의 부모도 정씨가 김씨와 결혼하는데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정씨가 직장을 구할 때가지 경제적으로 지원해주기로 했다. 김씨는 비록 정씨가 직장이 없더라도 정씨 부모의 지원 약속을 믿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김씨는 정씨와 정씨 부모의 요구대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김씨의 학위 준비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정씨의 부모가 애초 약속대로 경제적 지원을 해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정씨의 부모가 결혼 전 약속과 달리 지원을 중단한 경우 아내 김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 김씨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시부모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살거나(갈등이 깊어지면 이혼까지 하게 된다), 팔자 탓을 하면서 경력단절이라는 약점을 딛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할까? 슬하에 어린 자녀라도 생겼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엄경천 변호사는 “정씨와 김씨 사이 혼인계약의 내용은 정씨가 박사학위를 받고 직장을 구할 때까지 정씨의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정씨와 김씨는 부부로서 부양의무가 있고, 정씨의 부모는 정씨의 직계혈족으로서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부양의무가 있다. 정씨와 그 부모는 김씨와 사이에 혼인계약을 체결하면서 부양의 방법과 정도에 관하여도 협정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내 김씨는 체념하거나 이혼을 할 것이 아니라 자력이 있는 시부모에게 부양료 청구를 할 수 있다.

정씨의 부모는 애초 결혼할 때 약속한 생활비(부양료) 지급이 어려울 경우에는 가정법원에 사정변경을 이유로 부양료 감액청구를 할 수 있을지언정 며느리의 부양료 청구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엄경천 변호사는 가사전문 변호사로 법무법인 가족 소속이다.

엄경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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