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짜장면은 '블랙' 상식깨는 '빨간색 짜장' 오묘하네!
  • 입력날짜 2013-03-13 04: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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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짜장 원조라는 군산에서 맛 본 특이한 '홍영장' 짜장면
▲ 30대 중반의 직장인 부부가 물짜장을 맛있게 먹고 있다.     ©조종안
▲ 30대 중반의 직장인 부부가 물짜장을 맛있게 먹고 있다. ©조종안
 
작년 9월, 동생의 권유로 처음 맛보고 오묘한 맛에 빠져 '물짜장' 마니아가 된 내력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 후 이집저집 맛보고 다니면서 시각적, 미각적으로 유별났던 중화식당을 발견했다. 군산시 영화동에 있는 영화원(永華園)과 장미동에 있는 홍영장(鴻英莊) 두 곳.

물짜장 소스가 영화원은 붉은색이고, 홍영장은 고운 회색빛을 띠는데, 각자 독특한 맛과 향으로 입맛을 잡아당기는 것도 유별나다. 두 식당의 공통점은 개업한 지 50년이 넘었으며 화교 2세가 주방장으로 직접 음식을 조리하고,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물짜장은 20년 전 전주의 모 중국집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필자의 말에 두 식당 주인들은 고개를 저으며 정색했다. 뭐니뭐니해도 물짜장 원조는 군산이라는 것. 그들은 대중화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30년 전부터 메뉴에 올라 단골손님 미각을 즐겁게 해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면이 입안에 착착 감기는 영화원 물짜장
▲ 복을 상징하는 한자 ‘福’을 거꾸로 적어놓은 영화원     ©조종안
▲ 복을 상징하는 한자 ‘福’을 거꾸로 적어놓은 영화원 ©조종안
 
50년 전통의 영화원은 실내 분위기부터 남다르다. 중화풍의 실내 장식과 소품들은 식당의 품격을 말해주는 듯하다. 입구 유리창과 메뉴판 등에 거꾸로 써놓은 '福'(복)자도 이색적이다. 거꾸로 써놓은 이유는 손님들에게 하늘에서 福이 내려지기를 비는 의미라고 한다. 바르게 써놓으면 福이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는 것. 설명이 희화적이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구수한 춘장 냄새와 은은한 차이나 향이 어우러지면서 코끝을 즐겁게 해준다. 예년에 미군과 양공주들이 즐겨 찾았던 영화원은 볶음밥으로 유명했다. 돼지기름에 고슬고슬한 밥알을 볶는 냄새가 환상적으로, 오믈렛으로 싸먹는 정통 일본식 오므라이스 이상으로 인기가 좋았다.
▲ 소스가 붉은 영화원 물짜장, 향미가 독특하다.     ©조종안
▲ 소스가 붉은 영화원 물짜장, 향미가 독특하다. ©조종안
 
주인아주머니는 "손님들 식성이 다양해서 맛은 장담 못하지만, 재료는 자신할 수 있다"며 "우리 집 물짜장에는 해물, 채소, 육류 등 18가지 재료가 들어가고, 그중 바다의 인삼으로 불리는 해삼이 듬뿍 들어간다"고 소개한다. 붉은색의 물짜장은 순한 짬뽕처럼 느껴지면서 감칠맛이 혀를 휘감는다.

면을 직접 빼는 것도 영화원의 자랑. 짜장면은 밀가루와 물의 비율, 숙성 시간이 생명이라는데, 쫄깃한 면발은 매콤 달콤한 소스와 맛의 조화를 이루면서 미각을 돋운다. 수저로 소스와 건더기를 떠먹으면 '예술이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모두가 서울 '태화관'에서 조리기술을 연마한 여진육(67) 주방장의 작품. 사각사각 씹히는 깍두기도 일품이다.

보안업체에 다닌다는 30대 중반의 남자 손님은 "영화원 물짜장은 오색향미가 느껴져 아내도 좋아한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친구 따라 처음 왔을 때 음식이 깔끔하게 차려나오고 느끼하지 않아서 좋았다"며 "밥맛이 없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아내와 함께 물짜장을 먹으러 온다"고 말했다.

한꺼번에 두 가지 맛 즐기는 홍영장 물짜장
▲ 소스가 회색빛을 띠는 홍영장 물짜장, 맛이 단백한 게 특징.     ©조종안
▲ 소스가 회색빛을 띠는 홍영장 물짜장, 맛이 단백한 게 특징. ©조종안
 
군산시 중앙로 옛 경찰서 로터리에서 내항(구 조선은행)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동령고개가 나오는데, 내리막길 오른편에 자리한 홍영장은 1950년대 호떡집으로 개업해서 일찍이 손짜장면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한 영향으로 홍영장은 60대 이상 단골이 많다. '누군가 그리우면 홍영장에 가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주인 서원후(47)씨는 서울로 올라오라고 해도 싫다고 할 정도로 애향심도 강하다. 막내아들로 아버지에게 주방 기술을 전수받은 서씨는 주방장을 아내는 경리와 영업 상무를 겸하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식당의 역사만큼이나 구수하고 정겨운 주인아주머니 입담은 식욕을 한층 돋워준다.
▲ 물짜장 면발과 볶은 짜장. 먹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조종안
▲ 물짜장 면발과 볶은 짜장. 먹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조종안
 
홍영장 물짜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흐므지다'이다. 차지고 쫄깃한 면과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스가 각각 다른 그릇에 담겨 나오기 때문이다. 면의 절반만 물짜장 소스에 비벼 먹고 나머지는 볶은 짜장을 조금 달라고 해서 비벼 먹으면 포만감은 물론 먹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면과 볶은 짜장은 무한 리필이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꺼번에 두 가지 요리를 즐길 수 있어 '짬짜면'을 떠오르게 하는 홍영장 물짜장은 면과 국물을 분리해서 먹으면 건강에도 좋고, 먹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걸쭉하게 비빈 면발을 다른 접시에 담아 먹으면서 수저로 소스를 조금씩 떠먹으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맛이 입안에 감돈다.

홍영장 물짜장은 다양한 재료에 우렁이가 듬뿍 들어가는 게 특징. 순하면서도 독특한 향미가 일품인 소스도 그냥 떠먹지 말고 수저에 새우와 부추, 오징어와 호박, 우렁이와 버섯, 돼지고기와 양파 등 해물과 채소를 뷔페식으로 고르게 담아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으면 더욱 깊고 오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오늘처럼 집에서 한가하게 쉬는 날, 몸이 나른해지고 식욕이 떨어질 때는 입에 착착 감기는 쫄깃한 물짜장 한 그릇이 더욱 간절해진다.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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