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칙칙폭폭 기차는 여고졸업 후 처음이에요!"
  • 입력날짜 2013-03-07 05: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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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모습 그대로,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에 다녀와서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2월 28일(목) 아내와 전남 곡성군 오곡면에 있는 '섬진강 기차마을'(구 곡성역)에 다녀왔다. 전북 군산에서 서해안고속도로에 진입, 목포 방면으로 달리다가 고창 IC에서 방향을 바꿔 장성, 담양, 대덕, 옥과를 지나면 곡성으로, 구 곡성역 주차장까지는 승용차로 1시간 45분 정도 소요되었다.
▲ 영화와 드라마에 나왔던 기관차들이 구 곡성역에 전시되어 있다.     ©조종안
▲ 영화와 드라마에 나왔던 기관차들이 구 곡성역에 전시되어 있다. ©조종안
 
백제 시대에는 욕천(欲川), 욕내(欲乃)라 불리다가 산맥과 하천으로 흐름을 본 따 곡성(曲城)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시골장을 떠도는 장꾼들이 교통이 불편하여 통행에 불편을 느낀 나머지 곡성(哭聲)이라 불렀고, 그 후 곡성(穀城)이 되었다가 주민여론에 따라 곡성(谷城)으로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곡성역 유래 비문에서)

곡성의 지명 변천은 감칠맛 나는 옛날 얘기를 듣는 것 같았다. 해학도 묻어났다. 곡성(谷城)이란 지명은 글자 그대로 '골짜기의 성'을 뜻할 터, 그 옛날 시골 장꾼들이 산길을 오가며 얼마나 힘들었으면 상갓집 앞마당을 연상시키는 '哭聲'(곡성)이라 불렀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1151m)에서 발원하여 임실, 남원을 지나 곡성읍 북쪽에서 요천과 합류,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212.3km)과 전·남북 경계인 노령산맥 지맥이 지나는 고장, 곡성의 지세(地勢)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도로가 잘 정리돼있고, 곤방산(715m) 능선도 남다르게 빼어난 산세는 아니지만, 아늑하고 그윽했다.

쌍동이처럼 모양이 비슷한 옛날 간이역들
▲ 구 곡성역. 시공을 나누는 신비의 문처럼 안으로 들어가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     ©조종안
▲ 구 곡성역. 시공을 나누는 신비의 문처럼 안으로 들어가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 ©조종안
 
1933년 전라선(남원∼곡성)이 개통되면서 간이역으로 출발한 구 곡성역(등록문화재 122호)은 시공을 5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 건물은 물론 돌출된 입구까지 1960년대 군산선, 장항선 간이역들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 임피역, 대야역, 장항역, 서천역 등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시골 간이역들은 당시 국민학교 교복처럼 어찌 그리도 모양이 비슷한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모양으로 건축되어 간이역으로 출발한 군산선의 임피역과 전라선의 곡성역. 숱한 애환이 서린 두 역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일제가 옥구들녘 농산물을 거둬들여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역이었고, 하나는 섬진강 모래를 운반하기 위해 지은 역이었다는 것.

곡성역은 1999년 2월 전라선 복선전철화가 완공되면서 업무가 신역으로 옮겨가자 역사(驛舍) 기능을 잃게 된다. 그러나 건물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각종 놀이기구와 레저시설(곤충 생태계 전시관, 동물농장 등)을 갖춘 기차 테마파크의 증기기관차, 레일바이크(2.4km) 탑승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칙칙폭폭' 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구 곡성역
▲ 구 곡성역-심곡-가정을 오가는 미카형 기관차.     ©조종안
▲ 구 곡성역-심곡-가정을 오가는 미카형 기관차. ©조종안
 
입장권을 구매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딴세상, 금방이라도 '칙칙폭폭' 소리가 들려올 것 같았다. 낡은 철도 침목을 바닥에 깔아놓아 옛 고향동네 건널목을 떠오르게 했다. 한쪽에는 이곳이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주요 장면과 SBS 대하드라마 <토지> 촬영 장소였다는 안내판과 함께 영화와 드라마에 나왔던 기관차도 전시되어 시선을 끌었다.

하루 5회 운행하는 증기기관차 승차권은 구 곡성역 플랫폼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가 탈 기차는 오후 3시 30분 구 곡성역을 출발, 섬진강 물길을 따라 10km 구간을 달려 가정(柯亭)역에 도착, 30분 정도 주변경관을 조망하고 돌아온다고 했다. 중간에 레일바이크 출발지 침곡역에 잠시 정차하는데, 왕복 1시간 30분가량 소요되며 시속 30~40km로 달린다고.

추억의 기차여행 왕복 승차권 2매를 구매했다. 그런데 갈 때와 돌아올 때 좌석 번호가 달랐다. 고개가 갸우뚱. 매표소 직원이 "가실 때는 깊은 산세와 고즈넉한 산골 마을을, 오실 때는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시라고 다르게 배치했다"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소소하지만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이리(익산)로 기차 통학을 했던 아내도 꿈 많던 여고생 시절로 돌아간 표정. 기차 출발시각이 한 시간 남짓 남았기에 음료수를 사러 마트에 간 아내는 프렌치 커피와 고소미 과자 등을 가방에 챙기면서 "외진 산골 마을에 이렇게 훌륭한 레저시설이 있는지 몰랐다"며 마냥 즐거워했다.
▲ 비둘기호 컨셉으로 꾸몄다는 1호차 객실. 64인승으로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조종안
▲ 비둘기호 컨셉으로 꾸몄다는 1호차 객실. 64인승으로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조종안
 
추억의 기적소리 들으면서 떠난 기차여행

우리를 태우고 갈 기차는 '황제'를 뜻하는 '미카'(Mika)형 기관차. 복고풍 정취를 물씬 풍겼다. 승차권을 차장에게 보여주고 기차에 올랐다. 객실은 소란스럽고 부산했지만 정겨웠다. 자리가 정돈되자 기차는 출발을 알리는 기적을 울려댔다. 추억의 기적소리를 들으면서 기차여행을 하려니까 잊고 있던 추억들이 봄날 새싹 돋아나듯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기차가 출발해서 역내를 벗어나기 직전 "야, 저거다!" 소리가 튀어나왔다. 빽빽한 측백나무 울타리였다. 개발에 밀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 옛날 군산역, 대야역, 임피역에도 있었고, 장항선의 장항역, 서천역, 웅천역 등에도 있던 울타리. 특히 군산역 측백나무 울타리에는 떼뽀차(도둑차)를 전문으로 타는 사람들이 뚫어놓은 개구멍도 있었다. 필자도 그 구멍을 이용했던 사람 중 하나.

객차는 모두 3량. 스피커에서는 곡성의 명소 소개와 함께 1호차는 비둘기호, 2호차와 3호차는 무궁화호 콘셉트로 꾸몄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순간 1961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다음 해에 등장했던 '재건호'와 파월부대 이름을 딴 비둘기호, 맹호호, 청룡호, 백마호 등 60년대 열차이름들이 되뇌어지면서 뜻 모를 미소가 지어졌다.

아련한 추억을 머금은 기차여행의 낭만. 기차가 느리게 달리니 짜증도 나련만 모두가 하나같이 즐겁고 신나는 표정들이었다. 자주 울리는 기적소리 여운과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덜커덩' 소리는 깊은 향수를 자극했다. 그 옛날 열차에서 "찐계란 있어요, 김밥 있어요!"를 외치고 다니던 홍익회 아저씨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다.
▲ 도깨비를 감동시킬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다는 마천목 장군 이야기가 담긴 도깨비상     ©조종안
▲ 도깨비를 감동시킬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다는 마천목 장군 이야기가 담긴 도깨비상 ©조종안
 
방향이 바뀔 때마다 창밖 풍경이 슬라이드 영상처럼 지나갔다. 스피커에서는 '마천목 도깨비상', '심청이 이야기' 등 섬진강에 얽힌 전설이 청량한 목소리로 들려왔다. 그 순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면서 1970년대 초 고속버스로 서울에 올라갈 때 논산의 은진미륵, 보은 속리산, 천안삼거리 등을 소개하던 안내양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레일바이크 출발지 침곡역에 3분쯤 정차했다가 종점인 가정역에 도착했다. 소요시간은 25분. 차에서 내리니 분홍색 두가교(杜柯僑)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다리가 출렁인다 하여 '출렁다리'로도 불린다는 두가교는 총연장 168.3m, 폭 2.75m의 현수교로 섬진강 기차마을 명물 중 하나.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나룻배를 이용해서 건너다녔다고 한다.

위용을 자랑하는 현수교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17번 국도와 전라선 철길이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연출하는 경관은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부근에 녹색농촌 체험마을, 섬진강 천문대, 청소년 야영장, 기차 펜션 등이 있어 가족동반으로 오면 좋을 것 같았다.
▲ 완만한 주변 산세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흐르는 섬진강 물길     ©조종안
▲ 완만한 주변 산세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흐르는 섬진강 물길 ©조종안
 
가정역에서 돌아올 때는 강변을 바라보는 좌석이어서 창밖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산천을 감상하며 사색(思索)에 잠겨있던 아내는 "칙칙폭폭 기차는 여고 졸업 후 처음 타본다!"며 "신록이 우거진 여름이나 단풍이 짙게 물든 가을에 날을 잡아 다시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후 5시, 구 곡성역에 도착해서 시간이 없어 영화 세트장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곡성 전통시장 잡곡가게에서 찹쌀 한 되와 팥 두 홉을 사서 군산으로 향했다. 거스름돈을 내주며 "안녕히 가시쇼!"라고 짧게 인사하는 아주머니의 쇤 목소리가 가슴에 와 닿으며 하루해가 짧게만 느껴졌다.

조종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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