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알의 '알토란' 강인한 자연의 생명력 선물하다!
  • 입력날짜 2012-11-14 06: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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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밥에 소고기국'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북한 인민들에게 매일 먹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구호다. 소고기국의 정체가 궁금한 가운데 바로 '소고기 토란국'이라는 말을 한 비전향 장기수 분에게 들은바 있다. 양지를 듬뿍 넣고 토란과 함께 맛깔나게 끓여낸 소고기국이라는 것.

'토란국', 그 상징적인 맛은 북한 뿐 아니라 우리네 배고픈 6~7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첫 수확한 햅쌀로 밥을 짓고 텃밭에서 캐낸 토란으로 끓여낸 국은 남도 추석상에서 빠질 수 없는 명절 음식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토란의 알맹이는 토란국으로도 먹지만 그 줄기는 육개장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뿌리부터 줄기까지 버리는 게 하나도 없는 말 그대로 '알토란'같은 채소인 게다.

다섯 알 심어 놓은 토란 강인한 생명력 자랑...

지난 봄 다섯평 규모의 주말농장을 시작하면서 뭘 심을까 고민하던 중 토란국을 끓여먹고 선반위에 돌아다니던 몇 알의 토란이 눈에 띄었다. 설날에 토란국을 끓여먹고 버리기는 조금 그렇고 해서 놔두었던 토란 다섯 알 이었다.

안산시로부터 분양 받은 다섯평 남짓의 텃밭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상추를 비롯해 이것저것 심으면서 그 가장자리에 이 다섯알을 가져다가 흙을 조금 판 후 묻어 놓았었다. 그렇게 묻어놓은 토란은 1달 이상이 지났지만 싹이 트지 않아서 그냥 썩은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5월 중순 어느 주말엔가 찾은 텃밭 가장자리에는 앙증맞은 토란 새싹이 흙사이로 그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것도 다섯알 모두 그 생명의 싹을 틔웠던 것이다. 또 그렇게 힘겹게 생명을 틔운 토란은 지난 5,6월 큰 가뭄에도 끄떡하지 않고 그 생명을 이어 갔었다.
지난 7월 초 찍어 놓았던 토란 모습이다. 토란이 처음 그 잎을 갓 피어 올렸을 때 앙징 맞은 게 예쁘다기 보다는 너무나 귀엽게만 느껴졌었다. 그 어떤 관상용 화초 보다 ...... © 추광규
지난 7월 초 찍어 놓았던 토란 모습이다. 토란이 처음 그 잎을 갓 피어 올렸을 때 앙징 맞은 게 예쁘다기 보다는 너무나 귀엽게만 느껴졌었다. 그 어떤 관상용 화초 보다 ...... © 추광규
 
하지만 토란이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 건 쉽지 않았다. 호박잎이 무성해 지면서 일주 일만에 가보면 그 잎은 호박잎에 가려져 모습조차 보기 힘들었다. 해서 호박잎과 줄기를 계속해서 걷어 내주어야만 했었다. 비료도 주지 않고 호박잎과 그 억센 줄기에 채여서 인지 다른 밭 토란과는 달리 자라는 게 영 더뎠다.

늦게 싹을 틔워서 인지 자라는 내내 다른 밭 토란 크기와 비교해 보면 왜소한 것은 여전했다. 잎과 줄기 포기수를 비교해 보아도 잘 자란 다른 밭 토란에 비해 절반 정도에 불과 했다. 그런 토란도 수확의 시기는 왔다.

다른 밭의 토란은 빠른 곳은 지난 9월 추석때 부터 수확을 하고 거의 대부분은 10월초 부터 수확을 하는 가운데 우리 부부는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다가 10일(토) 마침내 가을걷이에 나섰다.
11월 10일 주말텃밭의 토란잎은 시들어 있었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 추광규
11월 10일 주말텃밭의 토란잎은 시들어 있었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 추광규
 
토란 잎줄기는 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만큼 이미 시들어 있었다.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채 자신이 토란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을 뿐이다. 어차피 수확하고자 하는 것은 땅속에 남아 있을 '토란'이라고 불리우는 그 알맹이.

어떻게 수확을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처음으로 수확해본 토란 채취는 의외로 간단했다. 처음 상상할때는 토란은 고구마처럼 뿌리 끝에 그 열매가 열리는 줄 알았기에 모종삽으로 주변을 넓게 판 후 알에 상처가 나는 것을 주의하면서 흙을 거둬 냈다.

하지만 주변에는 그 어떤 토란도 보이지 않았다. 해서 줄기 쪽을 살살 파헤쳐 보니 토란줄기 밑둥치에 혹이 붙은 것처럼 연이어져 열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큼지막한 생강과 같다고 상상하면 될 것 같다. 그렇게 밑둥치 바로 아래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토란을 하나씩 떼어 내니 그제서야 시장에서 파는 익숙한 모습의 토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알토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수확물 이었다. © 추광규
알토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수확물 이었다. © 추광규
 
한 포기를 걷어 낸 다음에는 굳이 넓고 깊게 팔 필요 없이 그냥 토란 밑둥치 흙만 조금 거둬낸 후 흔들어서 뽑아 올리니 쑥쑥 빠져 나온다. 또 그 줄기 밑둥치에는 혹처럼 불쑥불쑥 삐어져 나온 토실한 토란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섯 줄기를 모두 거둬내니 한 100여알 남짓 되는 것 같다. 다섯알이 백여알이 되어서 다시 돌아 온 것이다. 수확한 토란은 서늘한 곳에 내년 설 까지 잘 보관 해놓으려고 한다. 내년 설 명절에 식구들이 모두 모일때 이번에 수확한 토란으로 국을 끓여내면 이야기 거릿을 더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우리 내외가 1년간 직접 농사 지어 캐낸 순 국산 토란 이라고 말이다.....
지난 9월 한 포기에 100원씩 하는 엄지 손가락 만 한 모종을 서른포기를 심어 놓은게 제법 큼지막하게 자라났다. © 추광규
지난 9월 한 포기에 100원씩 하는 엄지 손가락 만 한 모종을 서른포기를 심어 놓은게 제법 큼지막하게 자라났다. © 추광규
 

주말농장은 이달 말까지, 배추는 김장용으로 자라날까?

지난 4월 시작된 주말농장은 일단 올해는 11월 말까지 그 기한이 정해져 있었다. 농사를 시작한 지난 수개월동안 상추는 물론이고 호박잎등 따다 먹으면서 텃밭 가꾸기의 쏠쏠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5월 부터 6월 말경까지 40일 이상 비한방울 내리지 않을 때는 매일 매일 밤늦게라도 찾아가 물을 뿌려 주어야만 했었다. 그런 농사 체험을 몸으로 직접 하다 보니 농부들이 얼마만큼이나 힘들게 생업에 종사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소중한 체험이라면 체험이라고 할 것 같다.

이제 마지막 남은 농사는 배추농사. 지난 9월에 포기당 100원씩 사다가 심어놓은 서른포기의 모종이 쑥쑥 자라더니 이젠 제법 김장용 배추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원래 한 평당 9~12포기가 적당하다고 하는데 중간에 솎아 내기도 그렇고 해서 그대로 놔두었더니 한 평에 20포기나 된다. 또 그렇게 밀식해서 심어 놓았더니 실하게 자라는 것 같지는 않더니만 이제는 속이 제법 차 있는게 김장용 배추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바로 옆, 텃밭의 배추는 수확을 서두르고 있었다. © 추광규
바로 옆, 텃밭의 배추는 수확을 서두르고 있었다. © 추광규
 
무우는 그 어떤 작물 보다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 추광규
무우는 그 어떤 작물 보다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 추광규
 

바로 옆에 있는 배추밭에서는 노부부가 그 수확에 한참이었다. 눈 대중으로 한 40포기 남짓은 되지 않는가 한다. 노 부부에게 왜 이렇게 일찍 수확을 하느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추우면 김장하기가 어렵고 해서 일찍 서두르고 있다'면서, '김치냉장고에 넣어 놓으려고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안산시에서 분양한 초지동의 2000여 텃밭. 11월 둘째 주 주말은 그렇게 수확과 함께 쓸쓸하게 텅 비어져 가는 텃밭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었다. 우리 텃밭도 2주 후에는 수확을 해야 할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올 김장 계획이 바쁘다. 지난 몇 년간 우리집 김장은 절임배추를 현지에서 택배로 배송시킨 후 처가댁 식구들이 김장할 때 아내가 덤으로 참여한 후 10여 포기 가져다가 먹었었다.

올해는 생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니 아내는 그릇 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된장국을 끓이기 위한 얼갈이 배추와 상추잎 그리고 수확한 토란은 물론 그 토란대 까지 자전거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계속해서 말을 건넨다.

"음 ..그릇은 그냥 욕조에다가 담가 놓으면 될 것 같고 ... 생새우 하고 굴은 소래에서 사와야 하고....."

추광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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