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락속, 여인들의 한(恨)과 정(情)
  • 입력날짜 2012-10-04 05: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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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 들녘은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농민이 한 해 동안 힘써야 할 농사일과 전래풍속, 예의범절 등을 달(月)에 따라 읊은 <농가월령가> 8월령은 추석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참깨 들깨 거둔 뒤에 도려내어 타작하고/ 담배 녹두 팔아다가 필요한 돈 마련하자/ 장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잊지 마소/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 명절 쇠어 보세/ 새 술 내려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성묘하고 나서 이웃끼리 나눠 먹세···."

자연에 순응하고, 조상을 숭배하며 이웃과 사촌처럼 지냈던 선조들의 슬기와 푸근한 인정이 마디마다 묻어남을 느낀다. 그럼에도 잘못 받아들인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우리의 전통과 미풍양속이 하나씩 사라져가고 문화를 비하하는 풍조가 너무도 안타깝다.

옛 여인들의 한(恨)과 정(情)이 담겨 있는 민요
옛 민요를 구성지게 막힘없이 부르는 채주은 할머니 © 조종안
옛 민요를 구성지게 막힘없이 부르는 채주은 할머니 © 조종안
 
군산 지역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민속 문화는 전북지방, 나아가 전국적으로 유사한 것이 많다고 한다. 따라서 전통 민속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군산시 삼학동에 사는 채주은(85) 할머니가 들려주는 민요들은 처음 듣는 곡이어서 흥미를 끌었다.

"저기~가는 저 선비는/ 서울~이라 유다른디/ 금~비둘키 안을라다/ 만쳐만~ 보고 놓고~갔네// 아들~애기/ 낳거들랑/ 태양산이라 이름~짓고/ 딸~애기 낳거들랑/ 한바대(바다)라 이름~짓소// 9년 지수 비가 온들/ 태양산이 무너날까/ 100년 지수 가물은들/ 한바대가 마를소냐"

채 할머니는 "어렸을 때 마을 어른들이 부르는 걸 보고 좋아서 배웠고, 제목은 <저기 가는 저 선비는>으로 알고 있다"며 "남녀가 이별헐 때 불르던 노래라고 헙디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설과 가락이 짧고 단순함에도 애절하게 느껴졌다.

채 할머니는 음의 높낮이 조절이 능숙했고, 마디마다 가락을 넣어가며 노래를 유창하게 소화해냈다. 70여 년 전에 배운 노래임에도 한 번도 막힘이 없어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민요의 의미에 대해서는 철없을 때 귀동냥으로 배워서 잘 모른다고 했다.

채 할머니는 "또 불러 보까유? 지가 핵교를 안 댕겨서 글자는 가갸·· 기억도 몰로지만 부를 노래는 얼마든지 있어유."라고 하기에 "그러면 할머니가 들로 산으로 나물 캐러 다니면서 재미나게 부르던 노래를 불러보세요"라고 하니까 가락에 흥을 실어 멋들어지게 이어갔다.

"홍도백화~ 피는~디는/ 신선~선녀가 화경~허고/ 황룡~등룡이 노던~디는/ 비늘~이 빠~져서 모야~있네/ 고진~광대 노던~디는/ 피리~나발대(피리좃대)만 남어~ 있고/ 활량의~ 기생이 노던~디는/ 꽃~장구나 목판만 남어~있고/ 우리네~ 인력이 노던~디는/ 산천초목이 뚜렷~허구나"

채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시집와서 영감(남편)한티 배운 노래가 생각나는디 한 번 불러 보께유"라며 노래를 이어갔다.

"꽃과 같이 고운 님을/ 열매 같이 맺어 놓고/ 가지 같이 붙은 정을/ 뿌리 같이 깊었던가/ 아무도 이별 없이/ 백년해로 허고 살읍시다"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밝고 흥겹게 느껴졌다. 채 할머니는 "일허면서 불렀는지, 놀믄서 불렀는지. 기분이 좋을 때 불렀는지, 슬플 쩌그 불렀는지 잘 모르겠다"며 "친구들과 부를 때는 재미있게 허니라고, '피리나팔대'를 '피리 좃대'로 고쳐 불렀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옛 민요에 대해 설명하는 이복웅 원장 © 조종안
옛 민요에 대해 설명하는 이복웅 원장 © 조종안
 
군산문화원 이복웅 원장은 "전라도 지역 발음이 억세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며 "우리의 전통 목관악기 가운데 하나인 대금(大笒)의 다른 이름이 '피리 젓대'인데, 당시 사람들이 재미있게 표현하느라 그렇게(피리좃대) 부른 것 같다"고 말했다.

민요 10여 곡을 앉은 자리에서 거침없이 부른 채 할머니는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할머니와 함께 민요를 불렀던 사람들이 이웃마을로 시집간 언니와 친구들이었고, 지역 방언이 섞여 있어 군산 지역에서 전해지는 '향토민요'(토속민요)로 받아들여졌다.

이 원장은 "채 할머니가 부른 민요들은 향토민요라기보다 규방에서 규방으로 전해져온 구비문학의 하나로 대부분 옛 여인들의 한(恨)과 정(情)이 담겨있다"며 "민요는 일제강점기 창가(唱歌)나 노동요(勞動謠)와 달리 부르는 사람과 지역에 따라 강원도 노래가 되기도 하고, 전라도 노래가 되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이 원장은 "한국인의 정서, 특히 한국 여인의 '한'은 서양처럼 결정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고 '정'으로 매듭지어지는 게 특징이다"면서 장사하러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어버린 정읍사(井邑詞)와 군산 앞바다 장자도의 '할매바위' 전설을 예로 들었다.

70년대에 멈춰선 팔순 할머니의 '기억의 시계'

한국전쟁 때 배운 노래에 대해 얘기하는 채 할머니 © 조종안
한국전쟁 때 배운 노래에 대해 얘기하는 채 할머니 © 조종안
 
채 할머니는 문득 스물두 살 인공(한국전쟁) 때 북에서 쳐들어온 인민군들이 마을 고샅을 행진할 때나 갈대밭을 헤치고 다니면서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며 가사를 소개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유/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유/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우에(위에)/ 영여끔 비춰주는 그득한 자유// (후렴)···

귀에 익은 가사여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북에서 부르는 '김일성 장군 노래'였다. 채 할머니는 '자욱'을 '자유'로 '역력히'를 '영여끔'으로, '거룩한'을 '그득한'으로 불렀고, 김일성 장군이 들어간 '후렴'(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은 부르지 않았다. 고의적으로 뺐는지, 깜빡 잊었는지 할머니 마음까지는 알 수 없었다.

채 할머니는 70년도 더 된 코흘리개 시절을 얘기 할 때도, 60년 전에 배운 민요를 설명할 때도 "굉장히 오래 됐어유. 30년, 40년도 넘었어유"를 되풀이했다. 40대 후반에 남편과 사별하고 채소장수, 소쿠리장수, 생선장수, 품팔이 등 '구절양장'의 험난한 삶을 살아온 채 할머니. 그의 가슴에 담긴 '기억의 시계'는 70년대에 멈춰있는 것 같아 애잔함을 더했다.

아래는 채주은 할머니가 들려준 민요

△ 담 안에는 송백화요/ 문간에는 버들이라/ 꽃가네는 버들이요/ 꾀꼬리는 노래허고/ 나르는 나비는 춤 잘 춘다/ 만물은 자유자랑 헐 때(허는디)/ 우리네 인생은/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분위기에 따라 살을 붙이기도 함)

△ 달가운데 노성(老松)나무/ 한 가지만 후려잡고(휘어잡고)/ 새북바람(새벽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너나 실컷 올고 가지/ 잠든 나를 왜 깨우냐/ 네가 울면 날이 새냐/ 장닭 울믄 날이 새지//

△ 심신단풍에 꽃밭에는/ 벌나비가 모두 앉고 찾아드는디/ 우리내 임은 어디를 갔나/ 해가져도 아니오네/ 무만 먹으믄 무심이나 항께/ 생강을 먹고 날 생각허소/ 싫커들랑 그만둬라/ 너 아니라도 골골마다/ 임이로구나// (남) 천리라도 내가가고/ 만리라도 내가가도/ 정든님 아니믄 내 못산다//

△ 강원도라 구월산 밑에/ 기기케는 저처녀는/ 자기 집이 어디가디/ 해가져도 아니가나/ (여) 나의 집은 신신산 흰구름 속에/ 초가삼간이 나 집일세/ 맘이나 있거들랑 찾아오고(따라오고)/ 싫커들랑 그만둬라// (남) 천리라도 내가 가고/ 만리라도 내가 가도/ 정든임 아니믄 내 못 산다//

△ 강산에 둥둥 뜨는 배는/ 엄자룡이 군기군량 싣고 가는밴가/ 강태공이 낚시질 가는 밴가/ 동자야 어서 빨리 배를 대라/ 바람 광풍 일어나믄/ 배가 뒤집어진다//

△ 지난 역사 동안에는/ 힘을 다하야 공부하고/ 삼삼오오 작반하야/ 야외로 산보를 나가보세/ 산수좋은 꽃을 찾어/ 마음이 상쾌하네/ 산에 올라 새소리는/ 시냇가의 물소리는/ 듣기에 좋단다/ 오늘 나의 할 일은 태산같고/ 노는 시간은 끝없으니/ 어서어서 돌아가서/ 나의 할 일을 예비하고/ 마음대로 놀아보세// (어렸을 때 야학에서 일본어와 함께 배운 노래)

조종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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