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원장의 의지와 소신이 중요하다는 바로 이 사람 ‘박재철’
  • 입력날짜 2012-10-01 08: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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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사람들 인터뷰]문래동 '박재철'주민자치위원장

지역공동체 형성과 주민자치기능을 강화 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최 일선에서 주민과 주민을 잇고, 주민과 행정을 잇고, 행정과 지역사회 문화의 발전을 이어 주는 일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주민자치위원장들과의 인터뷰를 창간 특별기획으로 마련해 보도하고자 그 여섯 번째 순서로 문래동 박재철 주민자치위원장을 만나 대담을 나누었다. 대담은 문래동 주민자치위원회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편집자 주]
문래동 박재철 주민자치위원장
문래동 박재철 주민자치위원장
 
▶먼저 박재철 위원장님(이하 위원장)본인에 대한 소개를 간략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래동에서 통장을 17년 동안 했습니다. 연령제한 규정 때문에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1974년도에 문래동 새마을금고 설립에 참여하였습니다. 1976년도에는 문래1동 조기축구회를 창설했고요. 문래1동 민방위대장을 역임했습니다.

▶하실 말씀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하시지요.
민방위대가 1975년 9월에 창설되었을 겁니다. 그때 서울시로부터 일정기간의 교육을 받은 후 민방위대 교관 증을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영등포구 전체민방위대원들을 상대로 교육을 시켰습니다. 저희 문래1동의 7통 대원들을 상대로 실전 훈련도 제가 처음 시켰고요. 그런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구자춘 당시 서울시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습니다. 훈련에 참가했던 7통 대원들도 단체표창을 받았고요.

▶영등포(문래동)에서 활동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는지요?
저는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도 시골의 여느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어요. 부모님께서 제가 시골 생활보다 서울(도시)생활 하길 원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서울에 왔고 문래동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딱 반세기 전이네요. 그러니까 문래동에 들어 온지 50년 됐습니다.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동기나 계기가 있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주민자치위원장님들이 대부분 지역에서 크고 작은 봉사를 하시다가 주민자치위원회에 가입하게 되고 주위의 권유로 위원장에 출마하여 선출되어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문래동 자유총연맹 회장 등으로 지역을 위해 꾸준히 봉사를 해왔고 그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 주민차지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주민자치위원장 선거에 입후보 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위원장선거에 입후보 하게 된 이유요? 주위로부터 출마 권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전
출마할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출마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네. 그래서 처음엔 극구사양을 했어요. 그런데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출마하게 되었고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거듭 사양하셨던 이유가 궁금한데요.
세세하게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고요. 2008년 9월에 문래1동과 2동이 통폐합되어 문래동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그 다음해인 2009년도에 통합 후 첫 위원장 선거가 있었고요. 1,2동 이라는 그림자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상황이었다는 말씀으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박재철 위원장
논의 과정에서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박재철 위원장
▶문래동에 유관단체가 몇 개나 되며 주민자치위원회와의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지역엔 15개의 단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 현안이 있을 때는 모든 단체의 리더들이 모여서 논의를 하여 중지를 모은 후 일을 진행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부연해서 말씀드리자면 15개 단체 중 8개 단체의 장들이 저희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이기도 합니다.

▶주민자치위원회 위원과 위원장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희지역에서의 위원장 역할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민과 문래동 발전을 위해 소통을 통한 화합으로 에너지를 모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문래동 주민자치위원회 또는 위원장님의 활동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2008년 9월에 문래1동과 2동이 통폐합되었습니다. 이후 변경된 명칭이 문래동입니다. 통합된 이후 제가 문래동 첫 주민자치위원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때가 2009년도입니다. 위원장으로 선출된 후 가장 시급한 문제는 1동 주민과 2동 주민간의 화합이었습니다. 정말 심각할 정도의 갈등이 존재 했습니다. 첫 주민차치위원회 위원 구성도 진통을 겪은 후에야 완성되었으니까요.
주민센터 옆 목화밭
주민센터 옆 목화밭
▶이후 어떻게 운영해 나가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일일이 찾아다니며 하소연도 하고 설득도 했지요. 그런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답답하고 힘든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위 분들과 함께 깊은 고민의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때 한국자치학회 전상직 회장이 구상한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통장님들과 지역관계자 분들을 모시고 토론에 토론을 거친 끝에 우리 문래동이 문익점의 목화 전래지이고 일제강점기에 방직공장이 있었다는 점에서 착안 하여 목화를 재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문래동 ‘목화마을 만들기’사업이 시작 되었으며 이런 과정들을 통해 두 동간의 갈등이 조금씩, 천천히 줄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문래동 ‘목화사업’에 대한 말씀을 좀 더 해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2010년도에 우리 문래동 주민 센터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목화마을 만들기 사업단(70여명) 발대식을 가졌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목화마을 만들기’를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주민공동체 사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첫 단계가 완성된 것입니다. 이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목화 시배유지 견학, 문래공원에서 목화씨 나눠주기, 목화묘목 분양, 문래공원 목화꽃탑 설치, 안양천변 목화군락지 시범 조성 등 ‘목화마을 만들기 사업’을 위해 다양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혹시 문래동에 목화재배 군락지로 조성된 곳이 있을까요?
현재 문래공원과 문래동 주민 센터 옆 600여 평의 공공부지에 목화가 재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민자치위원회 건물에 목화마을 체험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요. 체험관 및 목화재배 현장과 관련된 문의는 문래동 주민자치위원회나 주민 센터로 연락주시면 친절하게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혹시 수확을 하셨는지? 했다면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9년 겨울 50kg정도의 량을 시작으로 매년 목화솜을 수확하고 있으며 수확된 목화는 가공을 거쳐 방석, 베개, 쿠션, 이불 등을 만들어 독고어르신들과 불우이웃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 목화 얘기는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활동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아니오. 하나만 더요. 저는 오늘 인터넷 신문 영등포시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등포구 관계자 여러분께 정중히 요청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저희 문래동은 그동안 목화와 관련하여 많은 노력과 연구를 해왔습니다. 이제 이러한 노력과 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목화를 문래동의 특급브랜드로 삼아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 해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고자 합니다.
목화마을 체험관실 전시되어 있는 방적기구들
목화마을 체험관실 전시되어 있는 방적기구들
▶알겠습니다. 활동과 관련한 질문은 여기까지 하고요.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위원장님이 생각하시는 문래동의 시급한 현안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우리 문래동의 현안은 재개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제가 문래동에서 산지가 50년 됐습니다. 88년도 까지만 해도 문래1동에서 4동까지가 다 달동네였어요. 지금은 공장지대로 변해있지만 말이죠. 둘러보시면 아시겠지만 지어진지가 사오십년 된 2~3층 높이의 낡은 건물에 철과 관련된 업체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우리 문래동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래동의 시급한 현안은 ‘재개발’이다. 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개발과 관련해서 추진되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저희 문래동 주민들은 재개발을 통해서 문래동이 ‘공장지대’에서 살기 좋은 지역으로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재개발사업을 촉진시켜달라는 민원을 넣어 놓은 상황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 드리면 저희 문래동은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 된지가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지구지정이 확정되지 않고 있어요. 아무런 진척 없이 2년을 그냥 보냈단 말이지요. 이런 상황 때문에 건물주와 세입자 간에 빈번한 다툼과, 찬반으로 인한 구민 간의 갈등이 생기고 있습니다. 사업이 빨리 진행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에서 민원을 넣게 된 것입니다.

▶주민자치위원장으로 활동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곳은?
항상 가까이서 논의하여 지혜를 모아주는 주민자치위원들과 임원진들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그렇다면 가장 힘들게 하거나, 힘든 일은?
4년 동안 주민자치위원장 일을 맡아보고 있는데요. 보람 있는 일도 있지만 힘든 일도 있어요. 예를 든다면 주민차지위원 및 유관단체 회원들을 상대로 실시하는 교육에 대해서 말씀드려볼게요. 교육대상자인 저희 위원이나 단체회원들 중 상당수가 생업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거든요. 그런데 사전에 어떤 협의나 의견수렴 없이 구청에서 날자와 시간을 통보하고 참석을 요구해요. 이런 방식 때문에 불만이 쌓이고 동시에 참여율도 떨어진다고 보거든요. 앞으로 시정이 좀 됐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지역주민들이 주민자치위원회 및 위원장의 역할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지역에서 개최되는 행사가 1년에 몇 차례씩 있습니다. 그럴 때 재정지원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행사에 참석하여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함께 기울입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지금은 주민자치위원회의 활동과 위원장에 대해 예전보다는 많이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임기중 이것만은 꼭 해보 싶다(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당장은 임기를 잘 마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후임이 선출되어 목화사업이 문래동의 브랜드로 우뚝 설수 있도록 노력해 주고 이를 통한 수익창출을 도모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으로 지역구민 및 관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는 처음부터 의지와 소신을 가지고 주민과 주민간, 지역과 지역간의 소통을 통한 화합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갈등의 그림자가 남아있습니다. 이 갈등을 치유하고 지금보다 더 낳은 화합을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편 가르기가 없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잠깐만요. 정치인들의 편 가르기라고 하셨는데요.
사실 이런 말이 조심스럽기는 해요. 하지만 최소한 지역발전과 주민의 화합을 위한다면 정당간의 기 싸움이나 이념을 통한 편 가르기 같은 것들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씀까지만 드리겠습니다. 주민 화합과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긴 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문래동 유래
서울의 서남쪽에 위치한 문래동은 동으로 영등포구, 남으로는 도림천, 북으로는 당산동과 인접해 있으며 서로는 구로구 신도림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엔 갈대 무성하던 늪지대로 경기도 금천군 상북면 도야미리(道也味里)에 속했고,일제 강점기 초엔 시흥군 북면 도림리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일제 때 종연, 동양 등 대소 방직공장이 들어서자 일본인들에 의해서 사옥동이라 불리워지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광복 후 문익점의 목화 전래의 이름을 따서 문래동이라 지었다는 설이 있고, 또 일설은 학교와 관공서 등이 들어서자 글이 온다는 뜻에서 동명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으나 전자의 설을 주장하는 주민이 많다.

인 구 : 12,331세대 32,459명 (남 : 16,233 , 여 : 16,261) <2011. 12. 31현재>
면 적 : 1.49㎢ (영등포구24.5㎢의 6.08%

주 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로 28길 15(문래동3가 55-16)
전 화 : 02-2670-1174~89
팩 스 : 02-2670-1190

대담 박강열 국장/ 정리 오태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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