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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취재] ‘4.16의 아픔과 진실 마주하기’
6월 17일(토). 전교조 416특위에서 주최하는 ‘4.16의 아픔과 진실 마주하기’ 행사에 동행했다. 하루하루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에 아침 일찍 목포신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런 마음으로 40여 명의 교사들이 서울에서, 충북에서 모여 목포를 향해 출발했다. 세월호 희생자들 대부분이 학생과 교사들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 입장에서는 남의 일 같지 않다. 자식을 잃은 부모만큼은 아니더라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돼 별이 된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교사들이 많다. 304명 희생자 가운데 우연한 기회에 한두 명을 더 깊이 알게 됐고 그렇게 인연을 맺은 아이들이 잊히지 않고 반짝이도록 기꺼이 밤하늘이 된 교사들. 최주연 교사는 ‘겨울 방학식 교실행사’에서 우연히 강수정 학생 역할을 맡으면서 수정이를 알게 됐다. 또한, 문지성 학생과 생일이 같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지성이도 304명 가운데 특별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는 수정이와 지성이 얘기하다 그만 울컥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안산에서 온 강미자 교사는 주일학교 학생이었던 길채원 학생을, 권혁이 교사는 사회복지사를 꿈꿨던 전하영 학생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416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마음에서 참여 많은 교사가 이구동성으로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자는 뜻에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주연 교사는 “3년이 지났지만 끝난 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고, 권혜령 교사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되지만,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는 덜 잊기에, 잊지 않기 위해 오늘 시간을 냈다”고 말했다. 이길순 교사는 “단원고 운동장 계단에 새겨져 있던 노란 리본이 사라지고, 경기도교육청의 누리집에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팝업창이 사라져 놀랐다”고 말문을 연 뒤, “3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탈상하듯 세월호 지우기 작업을 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오후 2시쯤 목포신항에 도착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접한 풍경이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처참한 몰골의 세월호를 직접 보니 마치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움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용석 교사는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가 흉측하다. 살아있는 생명을 삼켜버린 괴물 같다”고 토로했고, 완도에서 태어났다는 김미영 교사는 “세월호 안에서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프다”며 고개를 떨궜다. 인양된 세월호는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휴전선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일시 정지’라는 차단기를 보며 더는 접근할 수 없는 분단의 땅처럼 느껴져 문득 ‘진실에 닿기까지는 아직도 많이 시간이 걸리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끝까지 기다립니다. 엄마니까. ”라는 펼침막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네게 닿을 게 내가 있을 게”, “영인아, 축구화 사놓았어. 땀 흘리며 잔디 위를 뛰는 모습.매일 상상해 봐. ”라는 팻말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철조망마다 무수히 매달린 노란 리본과 추모의 띠가 샛노란 눈물로 보였다. 세월호가 인양된 이후, 미수습자들이 돌아오고 있다. 5월 5일 고창석 선생님의 유골이 수습됐고, 이후 세월호 4층 선미에서 조은화 학생의 유해와 유류품이 발견됐고, 3층 중앙에서 허다윤 학생의 유해가 수습됐고, 3층 선미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이영숙 씨의 온전한 유골을 찾았다. 그러나 남현철·박영인 학생, 양승진 선생님, 여섯 살 혁규와 아빠 권재근 씨는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은화엄마, “두 다리 뻗고 실컷 한번 울어보고 싶다.” “못 찾을까 무섭고, 남겨질까 두렵고. 그렇게 3년을 끔찍하게 보냈다. 여기 있는 게 무섭고 정말 싫다. 집에 가고 싶다. 그러나 떠날 수가 없다. 팽목에서 소수로 남겨져 봐서... 신을 찾은 부모들은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마음껏 울지도 못했다. 끝내 못 찾은 부모들은 어떻게 사나?” 일행을 만난 은화엄마 이금희 님은 비교적 차분하게 이야기하다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숙연하게 듣고 있던 많은 교사가 여기저기에서 함께 눈물을 흘렸다. 또한 “은화가 옆에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은화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도 죽을 수 있다”며 “옆에 있는 가족들을 많이 안아주고 부디 행복하게, 재미있게, 웃으며 살라”는 말과 함께 오히려 방문객인 우리 일행을 한 사람 한 사람 안아주며 따뜻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동수 아빠 정성욱(416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님의 이야기도 들었다. 이곳 목포신항에는 20명 정도의 유가족들이 상주하고 있고, 그중에서 10명 정도가 교대로 작업하는 분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했다. 동수아빠는 “아이를 잃고 나서 절실히 느끼는 게 우리 교육과 우리 사회가 너무 틀에 갇혀 있다. 참사 당일 위험 상황에서 선생님들이 왜 모이라고 했을까? 왜 나가라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원망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에게 너무 공부 공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 소질, 재능 등을 살려주는 교육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일행은 추모와 다짐의 활동으로 현지에서 노란리본 천을 받아 메시지를 적어 인양장소 주변에 걸기도 하고, 미리 준비해가는 펼침막에 메시지를 돌아가며 함께 적고 걸기도 했다. “긴 시간 동안 무섭고 외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늦은 만큼 오랫동안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단 한명도 남겨지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힘내요. 모든 것이 밝혀질 때까지 함께 해요! 기억과 진실의 약속 함께 하겠습니다.”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교사들은 가슴에 담아 두었던 말들을 펼침막과 노란 리본에 쏟아놓기 시작했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글 대신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홍채연 노곡중(1) 학생은 “직접 와서 보고 듣자는 마음에서, 시험을 앞둔 시기임에도 용기내 왔다”며 “미수습자들이 모두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고, 아빠를 따라 충북에서 온 백의찬 어린이(초3)도 “이런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자못 어른스럽게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일행 말고도 주말을 맞이하여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삼삼오오 방문을 했고, ‘실상사 작은학교’ 학생들은 자원봉사하고 있었다. ‘세월호잊지않기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에서는 붕어빵을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선사하는 등 사람들은 목포신항에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일행은 세월호 전시관 등도 둘러보았다. 이제는 서울로 가야 할 시간, 그러나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가 돌아와도 기뻐할 수 없고, 다리 뻗고 실컷 울어보는 게 소원’이라는 은화엄마의 말이 자꾸만 귓전을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속히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도하면서, 노란 리본에 그런 마음들을 한 자락 담아 걸어놓고 되돌아섰다. 이용석 교사는 “이분들이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함께 할 것을 다짐했다”며 “여한 없게 하려면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고 했고, 구자숙 교사는 “아이를 만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고통에 마음 아팠다”며 “오늘 집에 가서 당장 실천하겠다”고 했다. 많은 교사가 한목소리로 생각보다 미수습자 가족들의 고통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며 “사람 먼저, 사람 우선, 사람 중심의 교육 및 사회 시스템이 질실하다”고 강조했다. 4.16 이전과 이후는 확연하게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저절로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을 것이다. 노을 속으로 멀어져 가는 세월호를 되돌아보며, 한 번 더 무겁게 약속하고 다짐했다. 별이 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교육과 우리 사회가 달라지는 계기로 삼겠노라고.
김형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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