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아직도’ 김수영의 시를 읽어야 할 이유
  • 입력날짜 2018-08-30 10: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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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시, "모더니스트가 아닌 리얼리스트의 작품"
김수영 시인을
김수영 시인을 "리얼리스트로 부르고 싶다"고 설명한 황규관 시인
황규관 시인이 김수영(1921~1968) 시인 서거 50년을 맞아 비평적 산문집을 펴냈다.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황규관 시인은 그간 시집을 다섯 권 냈고, 오래됐지만 변함없이 가난한 잡지 <삶이 보이는 창>의 편집 일도 하고 있다.

황규관 시인은 “김수영은 자신에게 고쳐야할 운명과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인격과 수준을 높여가겠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자체가 변화하고 운동하기 때문에 특정 인식을 계속 새로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식이라는 것 자체가 언제나 새로운 것이다.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모험하는 것이다”라며 김수영 시인을 리얼리스트로 부르고 싶다고 설명한다.

산문집 <리얼리스트 김수영>은 김수영의 시를 모더니스트가 아닌 리얼리스트의 작품으로 접근한다. 김수영에게는 우리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으며, 그는 그 복판에서 사유하고 시를 썼다. 역사적 사건을 통과하며 부단히 자신의 삶을 재구성함과 동시에 현실 변화를 꾀했다. 그 과정에서 김수영의 시가 나왔다.

황규관 시인은 김수영 시인의 삶과 문학을 ‘자유와 혁명과 사랑을 향한 여정’이라고 이름 붙인다. 김수영은 문학사가 아니라 근대사와 쟁투했기에, 김수영 시의 난해성을 시대와 쟁투하면서 취한 독특한 인식의 방법론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김수영의 시를 연대기적으로 읽어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황 시인은 “김수영은 1959년 작품 <모리배>에서 하이데거를 언급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는 “김수영 사후 하관할 때 하이데거 일역판을 던져줬다”고 증언했다. 김수영은 하이데거에 심취했다. 그러나 하이데거주의자는 아니었다.

김수영은 이미 초기부터 계속 자신을 변화시키고 모험하고 씨름했다. 그런 성향이 하이데거를 만났게 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이유는 그의 작품 중에 <모리배>, <반시론>에서 언급한 하이데거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를 하이데거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아무 증거 없는 텍스트로 과격하게 해석하는 것이라고 본다”며 김수영이 새로운 모험을 생각했던 것은 하이데거의 영향이 아닌, 본인의 기질이라고 말한다.

황 시인은 끝으로 “김수영에게 모험이란 존재론적인 모험이다. 그것은 시적인 모험과 같다. 그러나 형식적 실험은 아니다. 그가 인식과 사유의 실험과 모험으로 일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시다. 그렇기에 시가 난해해진 것이다. 요즘 시는 형식이나 인식 어딘가에 머물면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문학 제도권 안에서 주류인 사람들은 시의 양식을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려는 것이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한 방식은 시적 양식의 급진성이고, 시적 사유의 급진성에 거의 무감각한 것으로 본다. 현실에서 그런 양태들이 계속 존재하는 한, 김수영은 살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수영은 계속 신화적 존재로 살아있는 것이다”라며 김수영의 자세를 흠모만 하지 말고, 같이 해보기를 권한다.

김수영의 시를 따라 가면 마지막 작품인 <풀>로 집중된다. <풀>은 김수영의 돌발적 작품이 아니다. 그간의 시적 성과의 매듭이면서 또 다른 출발점이다. 김수영은 모두 끝이라고 말할 때 그것을 비판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태도를 초지일관 지속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김수영을 ‘아직도’ 읽어야 할 이유이다.

김수현 공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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