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화위지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우리나라 도제학교의 민낯(2)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란 독일·스위스의 도제식 교육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도입하고자 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처럼,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이식하듯 잘못 도입하면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분명 독일·스위스와 우리나라는 교육 및 산업 환경이 다르다. 독일·스위스에서 도제교육이 잘되고 있는 배경에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임금과 승진에서 거의 차별이 없고, 비교적 대우도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튼실한 중소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중3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과정은 직업학교로 2/3 정도가 직업학교를 선택하고(반대로 대학진학률은 20%대), 오스트리아의 중학생도 80%가 직업학교에 진학한다. 유럽의 직업학교들은 3~4년의 직업훈련 과정을 거치는데, 주당 2~3일은 학교에서 이론과 지식 위주의 공부를 하고, 주당 3~4일은 회사(공장)에서 실무교육을 받는다. 독일·스위스 등 유럽과 전혀 다른 우리나라 교육 및 산업 환경 그리고 덴마크의 경우 기업이 직업교육 관련 공공 기금을 정부에 의무적으로 내는 것처럼 유럽에서는 현장실습에 필요한 비용 대부분을 해당 기업이 부담한다. 그래서 정부 지원 못지않게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활발하다. 현장 실무교육이 직업학교에서 잘 이루어지도록 교육과정 수립과 운영에도 기업과 노조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는 기업이 중심이 아닌 밀어붙이기식으로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이다 보니, 많은 기업은 관심도 없고 훈련비용 부담 등 투자는커녕 울며 겨자 먹기로 진행하다 보니, 오히려 학생(훈련생)들을 귀찮게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현재 기업발굴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살펴보면 ‘학교 교사 지인의 회사, 도제 지원관 지인의 회사, 동문의 회사’가 대부분이다. 즉 도제학교 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을’이 되어 구걸하듯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학생들을 받아달라고 ‘인정’에 호소하는 있는 셈이다. 기업이 필요해 학생들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학교 교사들의 눈물 어린 하소연으로 훈련생들을 받다 보니, 또한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영세업체가 많다 보니, 체계적인 현장실습과 실무교육을 하기보다, 학생들을 대체인력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교는 학생을 ‘훈련생’으로 기업에 보내는데, 기업은 학생을 막 부려먹어도 되는 ‘일꾼’으로 보고 훈련과 실습 대신 노동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 ‘손해’라고 여기는 이상 ‘도제교육’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특성화고 현장교사들과 관련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도제학교를 도입하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수요자인 기업의 사정과 환경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업은 학교도 자선단체도 아니고 이익을 남기는 영리 집단이다. 기업은 회사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다. 독일·스위스의 기업들은 본인들이 필요에 의해, 도제교육에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훈련비용도 투자하고 그렇게 훈련된 학생들을 고용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기업환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에서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를 전시행정 차원에서 너무 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2015년 9개교 학교에서 2017년 198개교로 몇 곱절 증가했다. 이로 인해 공급이 수요를 넘어선 것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공급을 ‘도제반 학생’으로 보고, 수요를 ‘도제 기업’으로 본다면, 현재 공급이 10이라면 기업의 수요는 채 2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 공급(희망 학생)은 그나마 넘치는데 수요(도제 기업)가 없으니 공급을 운영하는 학교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제학교 관련 교사들은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인력사무소가 아님에도 이런 수요·공급의 불균형 논리에서 학교는 기업과 공단의 ‘을’이 될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최근 경기불황 등 이런저런 이유로 중소기업이 가뜩이나 힘든데,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2년 뒤에 정직원으로 근무할 고등학생을 훈련생으로 받는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산업인력공단에서 계속 나와서 시어머니처럼 사실상 감시·감독·간섭하겠다고 하는데 어느 기업이 기쁜 마음으로 학생들을 훈련생으로 받겠느냐는 것이다. 도제 관련 교사들에 의하면, “산업인력공단은 이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는 집단이 아니다. 전형적인 갑질, 관료주의에 찌들어 쥐꼬리만 한 지원금을 빌미로 학생을 볼모로 삼고 회사와 학교를 압박하는 집단”이라고 성토한다. 아울러 “갖가지 규정, 중복되는 서류, 기업에 요구하는 강도 높은 규정 등 자기들이 하는 것이 어떤 목적과 철학을 가지고 운영되어야 하는가를 망각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산업인력공단은 도제 사업 자체가 굉장히 잘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엄청난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는 일이라고는 예산 보내주고, 감사하고, 모니터링하고, 서류 준비하라고 하고... 이렇게 탁상행정, 전시행정만 하고 있으니 도제학교 입장에서는 도움은커녕 방해만 된다는 것이다. 산업인력공단은 도제학교에 대한 이른바 ‘갑질’ 대신 도제학교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차원에서 최우선으로 ‘도제 기업 유도 및 발굴’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인력사무소’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독일·스위스가 아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인력양성 여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출발하는데, 왜 우리나라 기업들은 도제 사업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볼멘 소리할 이유는 없다. 기업은 이익이 없는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을 원망하기 이전에 기업들이 도제를 하도록 방법을 찾고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다.” 도제 담당 교사들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기업이 도제 사업을 ‘부담’과 ‘손해’로 여기는 이상 성공하기 힘들다. 하루속히 ‘이익’과 ‘도움’으로 인식하도록 특단의 대책과 세심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직업교육과 도제교육은 정부의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정부는 이제라도 현장을 외면한 탁상행정, 밀어붙이기식 영혼 없는 정치 행정, 하향식 일방행정에서 벗어나, 잘못된 것은 과감하게 도려내고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처럼 현장과 도제교육 주체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도제학교(학생·학부모·교사)·기업·노조·관련 단체·정부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이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회는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을 속히 제정해 독일 등 유럽처럼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임금이나 승진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형태-칼럼 교육을 바꾸는 새힘 대표(전 영등포시대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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