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등포의 여름은 평등하지 않았다!
  • 입력날짜 2025-09-25 11: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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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언론 기후 보도 기획취재 7-총평] 기후 위기, ‘불평등’ 방치할 것인가, 녹색 공존’의 도시를 향할 것인가?
영등포의 여름을 위협하는 것은 자연의 조건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불평등’의 조건이다. 이는 녹지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기록이자, ‘같은 폭염, 다른 여름’을 보내야 하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다.

영등포시대는 ‘지역 언론 기후 보도 기획취재를 시작한 후 몇 달 동안 ‘산 없는 도시’ 영등포의 여름을 기록하기 위해 골목 곳곳을 누볐다.

처음의 질문은 단순했다. 과연 산이 없는 영등포의 지리적 특성이 영등포의 기후 위기를 더 취약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지만 취재가 깊어질수록 예상을 빗나가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질문을 바꿔야만 했다.

취재 과정에서 산이 없는 영등포구가 산이 있는 양천, 강서, 구로 등보다 기온이 높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또 영등포구 지역 내에서도 쪽방촌 기온이 수변을 끼고 있는 영등포구 여의도 아파트 단지와 비교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등포구의 공원과 녹지 면적은 수치상으로 타구에 비해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이는 ‘산이 없어 기후 위기에 취약할 것’이라는 단순한 예상이 빗나가는 지점이다.
▲영등포구 전경/이미지=영등포시대 db
▲영등포구 전경/이미지=영등포시대 db
 
그러나 문제는 그 분포에 있었다. 영등포구 공원 면적의 86.9%가 여의도동과 양평2동 단 두 곳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대림1동, 신길4동 등 주민 밀집 지역의 녹지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기후 위기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찾아오지만, 그 피해를 막아줄 ‘녹색 방패’는 불평등하게 주어진 게 현실이다.

기후 불평등의 가장 아픈 현장은 공공 주택지구에 편입된 완충녹지 974㎡가 유일한 쪽방촌이다.

취재팀이 쿨링포그(인공 안개 장치)가 설치된 골목과 설치되지 않은 골목 온도를 직접 측정한 결과, 쿨링포그만으로도 지상 기온을 최대 2.8도까지 낮출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인터뷰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안상호, 장경범 구민과 임헌호 구의원
▲인터뷰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안상호, 장경범 구민과 임헌호 구의원
 
작은 기술적 개입이 최소한의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결과다. 하지만 기술적 대책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한 여성 거주자는 “지금은 대부분 에어컨이 다 있다”라면서도 “생활비 부담(전기세)을 줄이기 위해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림의 떡이다”라고 토로했다.

에어컨 보급률이 70%에 달하지만, 전기세 걱정에 에어컨을 끄고 뜨거운 바람을 맞는다. 이 같은 현실은 기후 위기 대응이 단순한 인프라 보급을 넘어 에너지 복지와 주거 안정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 격차는 비단 쪽방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길7동에서 만난 노인 일자리 깔끔이 활동가 안상호(81) 어르신은 “여름엔 죽을 듯이 더워서 청소일을 하기엔 너무 힘들다”라고 말하며 “우리 같이 장애가 있는 노인들은 컴퓨터도 못 하고 정보를 몰라 쉼터, 바우처 제도를 이용할 수 없었다”라고 정보 접근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림3동에서 인테리어업을 하는 장경범 대표 역시 “평소 지나치던 아스팔트 바닥의 온도가 생각보다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라며 “폭염 때는 땀을 너무 흘려 탈수 증상이 올 때가 있고, 도배 작업 중 벽지가 금방 마르거나 풀 작업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어 애를 먹는다”라고 현장 노동자의 고충을 생생히 전했다.

물론 영등포구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무더위쉼터 5개소 운영, 쿨링포그 4곳 가동, 공용 에어컨 23대 설치 및 전기요금 지원, 호텔급 안전 숙소 3개소 마련 등 '특별보호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또한 ‘제3차 영등포구 기후위기 적응대책 세부시행계획(2026년~2030년)’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해, 동별 취약성과 리스크를 평가하고 맞춤형 과제를 마련할 계획이다.

영등포구의회 임헌호 의원은 “산이 없는 도시의 열섬 현상이나 미세먼지 등 대기질 상태도 상대적으로 열악하게 만들 수 있다”라며 “도시 내 녹지 확충이나 생태 친화적인 공간 조성이 더욱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25년 7월 영등포구 열 분포도/이미지=행정안전부
▲25년 7월 영등포구 열 분포도/이미지=행정안전부
 
취재를 마치며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산 없는 영등포의 여름을 위협하는 진짜 원인은 지리적 조건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이었다.

이제는 공원의 총량을 늘리는 것을 넘어, ‘생활권에서 체감할 수 있는 녹지의 질과 분포’를 고민해야 할 때다. 영등포구가 새로 수립할 3차 적응계획이 녹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가장 약한 곳부터 살피는 실질적인 실행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재난 앞에서 우리는 ‘불평등'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안전한 '녹색 공존’의 도시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는 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녹색전환 연구소와 ‘리영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기사’입니다.

박강열/김정현/김수현 기자/배옥숙/김경희/김수경/장심형 공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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