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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세가 위공 박세일의 ‘지도자의 길’을 다시 펼치며
지난 12일 저녁 어둠 속을 뚫고 가파른 언덕길 올라 남산 자락 숲속에 있는 문학의 집 서울 산림문학관을 찾아갔다. ‘한반도선진화재단’ 2025 송년회 및 후원의 밤 “빛을 찾는 밤 with 한선”에 함께 하고자 해서였다.
돌이켜보면 경세가(經世家) 위공 박세일(爲公 朴世逸, 1948~2017) 선생을 찾아 ‘한반도선진화재단’과 함께한 지 꽤 오랜 시간이 된 듯하다. 생전에 보수 진영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멀리서 뵙고 했었지만, 그의 사상을 집약한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단어 때문에 ‘한반도선진화재단’ 설립 이사장 박세일 선생을 추모하는 국회 행사에 참석하게 되면서 재단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사실 ‘공동체’라는 단어 자체가 수십 년 장애인복지 운동을 하면서 내 가슴에 늘 화두처럼 간직하고 있던 사회통합의 길이기도 했다.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가 분열한 지금, 통합사회를 그렸던 선생이 다시 그립기만 하다. 그러면서 그가 남긴 ‘안민학 서문(安民學 序文)’이라는 부제가 붙은 ‘지도자의 길’을 다시 꺼내어 읽어본다. 현대판 ‘목민심서(牧民心書)’라 일컬어지는 이 글은 2017년 1월, 박세일 이사장이 타계하고 난 후 세상에 알려진 유고(遺稿)로 200자 원고지 175장 분량이다. 읽을 때마다 글 속에 담겨있는 그의 마음에 머리와 가슴이 젖어 든다. 전반부에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관해 이야기하고 후반부는 그런 지도자와 함께 펼칠 국가에 대한 비전을 그리고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나누고자 한다. 박세일 선생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정치·행정 지도자들이 경세학 내지 지도자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국가 운영과 정치라는 중대한 책무를 맡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덕목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애민(愛民)’과 ‘수기(修己)’. 애민 정신을 가져야 하고 자기 수양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으로 자기 수양의 핵심은 사욕(私慾)과 소아심(小我心)을 줄이는 것이고, 공심(公心)과 천하와 하나 되는 마음인 천하심(天下心)을 확충하는 것으로 이러한 공심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기본 자질이다.
둘째, ‘비전(Vision)’과 ‘방략(方略)’. 지도자는 최소한 세계 흐름과 국정 운영의 대강(大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공동체가 나갈 ‘대(大)비전’과 그 비전을 실현할 ‘대(大)방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안민과 경세의 꿈과 방략을 가지지 않고 치열한 준비도 고민도 없이 경세·안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하여 대단히 무례한 일, 아니 죄악이다. 셋째, ‘구현(求賢)’과 ‘선청(善聽)’. 안민을 위한 경세를 하려면 천하의 현명한 인재들을 많이 구해야 하는데, 세상을 경영하는 것은 지도자 자신만의 두뇌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 최고 인재의 두뇌로 하는 것인 까닭이다. 그다음에는 이들 인재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선청이 필요하며, 인재들뿐만 아니라 국민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넷째, ‘후사(後史)’와 ‘회향(回向)’. 훌륭한 지도자는 자신의 시대가 마무리된 후 다가올 다음 시대를 배려하고 준비하는 후사 곧 ‘역사의식(historical consciousness)’을 지니고서 차세대 인재를 키우고, 차세대 정책개발을 돕는 후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도자는 자신이 이룩한 성과를 국민과 역사에 회향해야 한다. 자신이 이룬 공을 함께 노력한 공직자, 국민, 오늘이 있게끔 만든 과거 역사의 주역들에게 돌려드리고 본인은 빈손, 빈 마음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 표표히 떠나야만 한다. 이것이 대인(大人)의 풍모이자 지도자의 풍모라 하겠다. 다시 읽어도 가슴을 울리는 가르침이다. 우리 사회 혼란에 다들 정치에 그 책임이 있다고 하고, 정치가 제 갈 길 잃고 방황하는 데엔 리더십 부재에 그 원인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 해 돌이켜 보며 새해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연말연시, 새삼 박세일 선생이 그렸던 공심(公心)과 천하심(天下心)을 지닌 그런 풍모를 지닌 지도자가 그립기만 하다.
정중규 대한민국 국가 원로 자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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