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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싸움의 전선은 ‘부도덕함’이다
저항시인 김수영은 그의 시 ‘하······그림자가 없다’에서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고 탄식했지만, 부정 청약, 갑질, 위장 미혼, 입시부정, 위장전입, 탈세, 다운계약서, 병역기피, 논문 의혹, 음주 운전 등등 각종 탈법과 불법 사실을 필수 경력인 양 안고 있는 인물들만 용케도 나오는 인사청문회를 보며 올바른 사회를 향한 우리의 싸움 그 전선이 어디인지는 분명 깨닫게 된다. 그것은 ‘부도덕함’이다.
인사청문회를 볼 때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 사회지도층의 성공 신화 그 허구적 실체의 타락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인사청문회 대상 모두 예외 없이 탈법과 편법의 전문가이다 보니 그로 인해 파생될 우리 사회 전반의 도덕의식 해이를 염려치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인사정책의 난맥상은 마치 제정러시아 말기의 ‘장관들의 왈츠’를 연상시킨다. 그 시절 극심한 민심 이반으로 새로운 인물 찾기가 불가능해진 차르 정권은 각 부처 자리를 기존 장관들이 교대로 자리 바꿔가며 맡는 희극적 개각 놀음으로 민심을 달래려 했으니, 이른바 ‘장관들의 왈츠’다. ‘높은 신분일수록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까지야 기대하지 않는다 해도 사회지도층의 이러한 부도덕함은 바로 우리 사회의 건강도(健康度)에 치명타가 되어 돌아온다. 다시 김수영은 외친다.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우리의 싸움은 이렇게 다시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일까. ‘질긴 놈이 이긴다.’는 구호는 다시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부도덕함과의 싸움은 더욱 그러하다. 지금 우리의 전선은 과연 어디쯤 와 있는가. 언제 읽어도 가슴이 따스해 오는 신동엽 시인의 산문시 ‘석양 대통령’이 다시 그리워지는 것은 단순히 문학적 감성만은 아니리라.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고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鑛夫)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 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 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기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한번 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다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상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갯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 군가 불리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 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 사색(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톳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릿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언제 우리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인간미와 인격의 순수한 향기를 내며 국민에게 다가올 것이며, 국민이 본받고 싶어지는 그런 인품과 도덕성을 지니게 될 그날이 언제 다시 올 것인가. 사람이 홀로 갈 때 자기 그림자가 부끄럽지 않고, 우러러볼 때 하늘이 부끄럽지 않고, 굽어 볼 때 땅이 부끄럽지 않을 때 비로소 진실한 삶을 살고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우리의 지도자들이 그렇게 도덕적 양심이 바로 선다면 이 나라도 바로 설 것이다.
정중규 대한민국 국가 원로 자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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