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별을 기다리는 꽃 편지
  • 입력날짜 2016-04-04 16: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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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의 마음을 헤아렸더라면 영원한 이별의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겠지요”
기별을 기다리는 꽃 편지

한없이 보고 싶은 엄마∙아빠!
칠흑 같은 어둠의 잠에서 깨어나고 싶어도 도무지 몸을 가눌 수 없어 이렇게 심상을 전합니다.
계절의 풀무질 속에서 두 번의 겨울을 지냈나 봅니다.
수학여행 떠난다는 부푼 가슴에 떠나기 이틀 전 다친 손목의 깁스를 하고서도 철없이 까불어 대기만 했단 승현이었지요.
그리고 출발하던 날 아침 ‘잘 다녀오라’며 꼭 껴안아 주셨던 엄마의 목덜미 체온이 아직도 그리운데 아무리 뒤척이고 깁스한 묵직한 손을 뻗쳐 다가가려 해도 허공만을 휘젓다가 이내 곧 지쳐 버립니다.

사랑하는 엄마∙아빠!
내 대학생활 뒷바라지할 거라며 만우절 날 조그만 가게를 연지도 오늘이 꼭 2년째이네요.
가게 열고 보름 후에 떠난 꿈 많은 수학여행 길이 이리도 긴 이별의 여행일 줄 몰랐어요.
차라리 다친 손목 깁스 핑계 삼아 출발치 않았더라면,
다친 손 염려되어 많이도 망설여 하셨던 엄마∙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더라면 이토록, 아니 영원한 이별의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겠지요?

엄마∙아빠 소식 간절하여 겨울엔 반짝이는 눈꽃을, 봄엔 복수초, 매화, 산수유, 민들레, 개나리꽃으로 소식 달라 기별을 넣었건만 모두 함흥차사였지요.
남녘 바다의 훈풍에 봄꽃 즈려 밟고서 사뿐히 날아오르던 노랑나비, 흰나비는 지친 날갯짓으로 헐떡이며 지금껏 함평 나비 골에 흑 나비 되어 머무는 건지 도무지
엄마∙아빠 기별을 듣질 못하네요?


내를 똥강아지라 부르던 우리 엄마!
이승현이 없는 집의 재활용품은 누가 비워 주나요?
중학교 때부터 줄곧 거들어 드렸던 일이었는데, 그리고 저리고 아픈 어깨는 나 대신 누가 주물러 줘요?
시원타며 웃음 번진 엄마의 모습은 잡히질 않아요.

참, 엄마!
인왕산 골 노처녀 이모는 잘 계시나요?
내 없어 고통의 나날을 지내고 있는 엄마를 간혹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네며 동무해 주기는 하는 거죠?
엄마∙아빠
이젠, 두려움도 몰라요. 다만 내 영혼이 엄마, 아빠 찾아 지고 새는 날마다 허공만을 헤매며 잠들지 못하고 있을 뿐이어요. 깁스한 손 뻗어 절벽 같은 낭떠러지를 기어오르고 발버둥 하다가 이내 손톱 밑 새빨간 상흔을 안고 쿵 떨어져 내쳐진 것이 저의 마지막 기억인 것을 행여, 인왕산 이모가 묻거든, 그렇게만 전해 줘요.

며칠 후면 어김없이 헤어진 벗들의 사이 사이로 벚꽃이 만발하겠지요?
화사한 꽃 꽃물 질 때 짓무른 내 눈도 씻기어 엄마, 아빠의 품에 안기길 바라고 또 바랄게요.
그 날만을 기다리며 이만 맺습니다.

2016.04.01

작은 가게를 열었던 만우절 날을 기억하며
엄마∙아빠의 똥강아지 백승현 올림

대신 쓴 이: 문래예술창작촌 수필가 류성주 (승현 이름 아이의 아빠)



백승현

“엄마가 일이 많아서 그러는 데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거 한 번만 도와줄래?”
몇 년 전 중학생이던 승현이에게 엄마가 이렇게 부탁했다. 이날부터 승현이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이나 밤에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병과 종이 등 재활용 쓰레기를 종류별로 모았다.
단원고 2학년 8반 백승현(17) 군은 엄마가 이것저것 심부름을 많이 시켜도 볼멘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집안일도 자주 도와줬고, 엄마가 힘들어 보이면 어깨도 주물러줬다.
승현이는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다. 늘 주위 사람을 배려하는 착한 성품이었다.
키는 187cm이었고 동물을 좋아했던 승현이는 나중에 커서 모델이나 동물 조련사가 되고 싶어 했다.
맞벌이 하던 엄마는 2014년 4월 1일 조그마한 가게를 냈다. 외동아들인 승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 돈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보름 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승현이는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5월 6일, 엄마는 돌아온 아들의 오른손을 잡았다. 따뜻하기를 바랐지만 차가 왔다.

인용: 잊지 않겠습니다. 2015, 한겨레출판사



류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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