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알고 보면 같은 피해자”
  • 입력날짜 2016-05-29 16:42:46
    • 기사보내기 
‘1020톡톡 토크 콘서트’, 아주 특별한 시간 가져
지난 2년 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가장 멀리 있을 수밖에 없었던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와 '생존학생'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얘기하는, 아주 특별하고도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지난 21일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열린 '1020톡톡, 토크 콘서트'에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를 대표하여 김인기 씨와 박예나 씨가 참석했고 생존학생을 대표하여 박준혁 학생이 참석해 서로의 입장과 상처, 아픔을 진솔하게 꺼내놓았다.

고(故) 박성호 군 둘째 누나 예나 씨(22)는 준혁 학생에게 "성호 뒷자리에 앉았고 성호의 관심분야였던 역사학과를 진학했다고 해서 더 친근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생존자를 보면 자꾸 희생자 얼굴이 겹쳐 힘들다는 유가족들이 있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다. 생존학생을 공격하는 악플을 접할 때 챙겨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다"고 덧붙였다.

단원고 졸업생이라고 본인 소개를 한 박준혁(20) 학생은 올해 대학에 진학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그는 제일 마지막으로 배에서 탈출한 생존자다. 거센 바닷물을 뚫고 힘겹게 나왔지만, 그러나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한동안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탈출하기 직전까지 손을 잡고 있었던 친구를 갑자기 밀려온 파도에 잃어버린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고 참사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한동안 숨어 지내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준혁 학생은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학교 갔다 학원 갔다 집에 와서 자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달라져 버린 상황으로 한동안 사회로부터 멀어지려 했고 숨어 지내다시피 했단다.

"대학 선배들이 나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더 많이 관심 두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동안 뭐 하고 있었나? 돌아보게 되었고, 세월호 문제를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 보며 힘을 얻어 나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기자들의 인터뷰에도 응하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책 내는 데도 참여하고 학생회 일에도 참여하는 등 이제는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친구들(희생자) 부모님들과도 연락하고 지내냐는 질문에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경빈 어머니는 경빈이 장례식 때 처음 보았고, 솔직히 불편한 마음도 있었으나 어머니의 배려 덕분에 그때 이후 자주 만나고 연락하고 지낸다"며 "또한 내 손을 잡고 나오다 놓친 수정이 부모님과는 처음에는 만남을 피했다, 나를 만나면 아픔이 커질 것 같아서. 그러나 만나는 게 더 힘이 되고 치유하는 길이 될 거라는 방송국 PD님 권유로 만났는데, 만나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죄책감 갖지 말고 이제는 사회를 바꿀 시민으로 올라서야

고(故) 김웅기 군의 큰형 김인기 씨(29)는 "생존학생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서로 마음 아플까봐 조심스러워 못했는데 오늘 또 다른 피해자인 준혁 학생을 만나 반가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준혁 학생처럼 생존자가 있어서 다행이고, 생존학생들이 죄책감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반가움과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준혁 학생이 앞으로 희생자를 생각해서라도 더 뜻있게 살겠다고 하고 기회가 되는대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는데 정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예나 씨도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들 중에서 이런저런 아픔과 말 못 할 사정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생존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라며 "나는 동생을 잃었고 준혁 학생은 친구들을 잃었다. 한순간에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피해자로서 동병상련의 동질감을 느낀다"며 생존 학생의 아픔에 공감했다.

인기 씨는 이미 동생의 유품을 정리해 놓고도 동생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어, 동생을 아직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끈을 붙잡고 동생의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왜 싸우고 있는지 묻게 된다. 솔직히 놔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툭 끊어져버린 시간, 지난 2년은 잠도 못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상실의 시간이었다.
부모님 앞에서 울지 마라 하는데, 왜 우리는 슬퍼할 권리마저 박탈당해야 하는가... 동생과 약속했다 더는 가해자, 방관자의 모습으로 살지 않고 사회를 바꿀 시민으로 살겠다고... 나중에 동생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나 씨는 또한 최근 희생 학생 제적과 교실 존치 문제로 무척 속상하다고 했다. 모교이자 동생이 다녔던 단원고 앞에서 농성할 줄 몰랐다며, 어떻게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제적하고 교실을 뺏을 생각만 하는지, 흔적을 치워버릴 생각만 하는지 화가 난다고 했다.

그는 특히 "남의 학교에서 뭐하는 짓이냐는 행정실장의 말과 나를 가르쳤고 성호도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에서 혹은 단원고에서 누구보다 자신의 제자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똑똑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의 흔적을 지우는 것에 동참하면서 전혀 미안함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에 충격받았다."라고 서운함을 표현했다.

서로 다른 입장과 처지이지만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와 '생존학생'의 모처럼의 만남과 깊은 대화는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번 만남을 통해 인기 씨는 "그동안 주변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제대로 말도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행복하고 많은 힘을 얻게 된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 즉 첫걸음이라고 본다. 끝까지 싸울 것"라고 의지를 다졌다. 준혁 학생도 "세월호 참사가 역사에 가감 없이 사실 그대로 기록되어야 하고 우리사회의 큰 전환점이 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형태 기자
<저작권자 ⓒ 영등포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