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가 읽으면 교양물, 아들이 읽으면 체포?
  • 입력날짜 2013-02-03 05: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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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역을 돌아보고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올랐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장날(4·9일) 하루 전인데도 거리는 사람의 발길이 뜸했다. 영업용 택시들도 손님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광장 한쪽에서 고단한 듯 쉬고 있었다. 점심은 태백산맥문학관(아래 문학관) 관람한 후 먹기로 하고 벌교천(筏橋川)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 태백산맥 문학관 건물과 마주보고 있는 이종상 화백의 옹석벽화     © 조종안
▲ 태백산맥 문학관 건물과 마주보고 있는 이종상 화백의 옹석벽화 © 조종안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통해 벌교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고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개관했다는 문학관(2008년 11월 1일 개관)은 조형미가 뛰어났다. 건축예술에 문외한임에도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특히 전시실과 마주한 벽면에 새겨진 벽화는 또 하나의 걸작으로 한동안 발길을 붙잡았다.

문학관 건물은 건축가 김원씨 설계를 바탕으로 민족분단의 아픔과 벌교의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벌교읍 제석산(563m) 등줄기를 잘라낸 자리에 지었다고 한다. 김원은 산자락을 잘라내는 행동은 절대 용납되지 않지만, 소설이 그려낸 분단의 아픔은 산줄기를 잘라내는 아픔과 비견될 것이기에, 그 아픔을 그대로 보여줘야 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통일 염원이 담긴 벽화와 문학관 건물

▲ 옹석벽화에 대해 설명하는 허경림 문화관광해설사     © 조종안
▲ 옹석벽화에 대해 설명하는 허경림 문화관광해설사 © 조종안
 
전시실에 들어서니 문학기행 중인 전주 덕진중학교 학생 40여 명이 허경림(40)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허 해설사는 "전시실에는 조정래 선생의 치열한 작가 정신이 깃들어 있다"며 "작가가 절규하는 통일의 염원은 이 시대 우리 민족의 화두이며 과제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옹석벽화'(擁石壁畵)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벽화는 이종상 화백이 <원형상-백두대간의 염원>이라는 제목을 붙여 시각화했으며 작품 크기는 폭 8100cm, 높이 800cm, 두께 23cm로 세계 최대·최초의 야외 건식 '옹석벽화'로 제작됐습니다. 시작에서 완성까지 1년 6개월 걸렸으며 재료는 백두대간 오방색 자연석을 사용했고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북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허 해설사는 "옹석벽화는 소설 태백산맥의 높은 문학성 속에서 질곡의 역사를 극복하고 광맥처럼 묻혀있는 민족의 염원을 발굴, 이를 첨단 건축 언어로 표현했다, 제2전시실은 공중에 매달려 있는 형상으로 설계됐다"며 "그래서 문학관은 역사의 어둠과 빛을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는 장소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 어른 키 높이의 <태백산맥> 육필원고와 조정래 캐리커처     © 조종안
▲ 어른 키 높이의 <태백산맥> 육필원고와 조정래 캐리커처 © 조종안
 
허경림 해설사에 의하면 실제 빨치산의 흔적을 찾기 위해 지리산 종주만 열두 번을 했으며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 작업만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태백산맥> 전 10권의 친필원고와 취재수첩, 300명 가까운 소설 속 인물들을 정리해놓은 노트 등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작가의 작품에 대한 치밀함과 섬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섯 마당으로 나뉜 제1, 제2 전시실에는 작가 조정래가 1983년 7월에 집필을 시작해서 6년 만인 1989년 10월에 완결하고 이적성 시비로 유형무형의 고통을 겪으며 분단문학의 최고봉에 올랐던 <태백산맥>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특히 성인의 키보다 큰 육필 원고 1만6500매는 학생도 어른도 탄성을 자아냈다.

두고두고 한국 검찰의 오명으로 남을 자료들

피부에 와 닿는 자료들을 보면서 역사적 진실을 드려내려 했던 작가의 용기와 열정에 감동과 환희의 박수를 보냈다. 그럼에도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게 있었다. 우익세력의 경고·협박과 검찰의 내사, 명예훼손과 국가보안법 혐의로 고소·고발당한 1994년부터 무혐의 판정이 내려지는 2005년까지 언론보도 등을 스크랩해놓은 신문자료였다.
▲ 우익단체의 영화상영 금지 경고와 고소·고발 관련 기사(한국일보)     © 조종안
▲ 우익단체의 영화상영 금지 경고와 고소·고발 관련 기사(한국일보) © 조종안
 
1992년 대검찰청 발표에서 단서 조항으로 '대학생이나 노동자가 읽으면 이적표현물 수집죄로 구속할 것이고, 일반인들이 교양으로 읽으면 괜찮다'고 했다. 이 말은 '어머니가 안방에서 읽으면 교양물이요, 건넌방에서 아들이 읽으면 체포한다'는 말과 같다는 조정래씨 증언은 그야말로 희극. 1950년대 코미디영화 제목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가 떠올랐다.

자료에 의하면 1994년 4월 이승만 전 대통령 양자 이 모씨와 8개 우익단체가 <태백산맥> 저자 조정래와 출판사 대표를 보안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책의 일부 내용이 이승만 정권을 친미 괴뢰정부로 묘사하고 빨치산 활동을 미화함으로써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고 이적성이 있다는 것이 고발 취지였다.

당시 검찰 규정에는 검사가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할 때 사건을 수리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끝내게 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은 <태백산맥>에 대해 국가보안법 제7조 1항(찬양·고무)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11년을 미뤘던 것. 담당 검사가 10여 명이나 바뀌도록 종결을 짓지 못했다니 두고두고 검찰의 오명으로 남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늑한 도서관 분위기를 풍기는 2층은 문학 사랑방으로 <아리랑> <한강> 등 조정래 작가의 다른 작품을 비롯해 <세종대왕> <이순신>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등 위인전 세트와 예술 관련 서적들을 전시해놓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열린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배에서는 '꼬르륵', 눈앞에는 참꼬막이 아른아른
옥상에 오르니 제석산 줄기와 부근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옥상은 앞으로도 <태백산맥> 관련 평가와 연관 작업이 계속 이뤄진 것이기에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도록, 즉 '되어진'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개념의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문학관 주변을 카메라에 담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전시실에서 나와서 곧장 식당으로 가려니까 버스에 지갑을 놓고 내린 것처럼 허전하고 서운했다. 문학관 우측에 있는 '현 부자네 집'과 '소화네 집'을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건물터가 명당이라는 현 부자네 집은 일본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통 한옥도 아니어서 흥미를 끌었다. 안채에서 바라본 대문은 TV 드라마에서 봤던 고구려 성곽의 망루를 떠오르게 하기도.

구경도 좋지만, 허기부터 달래야 했다. 해서 <태백산맥>에서 소화(素花)네 집으로 그려지는 현 부자네 집 제각은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만족하고 식당으로 방향을 잡았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눈앞에는 그토록 졸깃하다는 참꼬막이, 입에서는 계속 군침이 돌고 있었다.


2012년 12월 28일~29일에 다녀왔습니다.

조종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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