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시간 뉴욕 가는길 .. '갑자기 기체가 요동 치더니'
  • 입력날짜 2012-12-10 04: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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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지매의 뉴욕 여행기] 안전장치는 고작 ‘안전벨트’ 뿐인데
공항은 늘 살아있다. 만남과 이별이 있고 설렘이 있다. 이번 여행(2012년 10월 11일 ~11월 12일)은 특별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어 더욱 설레었다. 두 달 동안 여행 준비를 하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걸으면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렸었다.

아들이 아빠가 된지 7개월이 되었는데도 손자를 안아보지 못해 안타까웠었다. 음식점에서 아기 업은 엄마에게 “저, 애기 엄마! 애기 발 한번 만져 봐도 될까요?” 허락 받고 아기 발을 살짝 만져보곤 마음이 울컥 했었다.

서점에 가서 아기가 볼 책을 고르며 3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음에 놀랐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은 변하지 않기 때문인가 보다.

우~·웅 비행기가 하늘로 비상한다. 14시간 뉴욕 행 비행이 시작되었다. 오른쪽 옆에는 브라질 청년이 통로 건너 왼쪽에는 20대로 보이는 백인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이륙 후 두어 시간이 지나자 점심 식사가 나왔다.

그때였다. 바닥으로 그릇이 ‘두두둑’ 떨어졌다. 놀란 마음을 진정할 사이도 없이 몸이 붕~ 떳다가 내려왔다. 와르르 그릇 쏟아지는 소리, 국물은 엎어지고, 쟁반은 날라 갔다. ‘아~악!’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온 내 비명소리와 합쳐져 들려왔다.
미국에 도착 한 후 이번 여행의 목적지였던 아들이 거주하는 브라운 스톤에서 한 컷 찰칵!  © 임춘신
미국에 도착 한 후 이번 여행의 목적지였던 아들이 거주하는 브라운 스톤에서 한 컷 찰칵! © 임춘신
 
미국 가는 길 참으로 험난하고 험난해도 아들을 만나는 순간....
순간 공포가 몰려왔다. 신문에서 본 것처럼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겠구나 싶었다. 공중에서 비행기는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가진 안전장치란 의자에 붙어 있는 안전벨트 하나 뿐. 서너 차례의 격렬한 흔들림이 끝난 후 정말 다행스럽게도 비행기는 잠잠해졌다.

아수라장이 된 기내를 신속하게 정리하고 있는 승무원들을 보며 마음을 진정하고 있던 중. 앞줄에 앉아 있던 아저씨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미리 기내 방송도 하지 않고 사과 방송도 하지 않는다며 큰 소리로 불평했다. 이제 살만하니 그런 불평이 터져 나왔을터. 아저씨는 양말만 조금 젖었을 뿐이었다.

통로 건너 왼쪽에 있던 백인 아가씨는 딱할 정도로 국물과 음식들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미소를 띠며 닦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짧은 순간이지만 죽음의 공포를 겪은 나는 영화도 보고 게임을 즐기려던 생각을 바꾸어 법정 스님의 다큐멘터리를 보기로 했다.

“가진 게 적으면 매인 데가 없어 홀가분하다. 텅 빈 것에 대한 충만함을 느낀다.”

법정 스님이 하신 말씀이다. 살아서는 그 삶에 철저했고, 죽음 앞에서 그 죽음에 철저했던 스님의 생전 모습을 스크린으로 보니 잊고 살던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부담스러웠던 긴 시간 비행기 속 여행은 어느새 끝나가고 있었다. ‘죤 에프케네디’ 공항 착륙 기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동시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만남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1분도 길게만 느껴졌다.

미국 입국 수속 줄은 길기만하다. 1시간은 족히 걸릴 줄을 보니 한숨부터 나온다. 마음은 급한데 수속 절차를 하는 사무원들의 손은 느리기만 하다. 매일 되풀이 되는 일이어서인지 표정이 없다. 여기가 에너지틱한 뉴욕일까 싶다. 우리나라의 빠른 손놀림과 일처리가 벌써 그리워진다.

반갑고 기쁜 마음에 무작정 들이대는 할미 할배에 놀라 이제 7개월인 손자는 입을 실룩거린다.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이다. 머쓱해 물러서며 그제야 아들을 본다. 아이를 안고 서 있는 모습이 의젓하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틀이 잡혀 간다. 아! 이곳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네. 꼭 껴안으니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브라운 스톤을 붉게 물들였던 단풍 잎은  한국의 단풍과 그 차이는 느낄 수 없었다.      © 임춘신
브라운 스톤을 붉게 물들였던 단풍 잎은 한국의 단풍과 그 차이는 느낄 수 없었다. © 임춘신
 
아들의 집이 있는 부루클린으로 가는 길은 차 막힘이 무척 심했다. 막힘이 덜한 뒷길로 가다보니 볼거리가 많다. 유대인이 사는 지역이다. 사람들의 복장이 특이해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 시대 차림 그대로다.

남자들은 검은 코트, 검은 색 챙모자, 굽슬굽슬 턱수염, 꼬불꼬불 웨이브를 넣은 구레나룻이 목까지 내려온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똑같은 차림이다. 여자들도 검은 색과 회색 옷만 입는다고 한다. 세계 패션 1번지 뉴욕에서 어떤 물결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전통을 지켜 나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저들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내가 머물 곳이 있는 거리는 브라운 스톤의 3층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그 곳은 아름드리 큰 나무와 어울려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노랗게, 빨갛게 물들은 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 멋진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에 가슴이 부푼다. (다음 회에 계속)

임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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