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정부, 노동 정책이 없다
  • 입력날짜 2013-03-17 07:20:56 | 수정날짜 2013-03-17 14: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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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후 그 자리에 고등학생을 아르바이트로 쓰는 기업은 있다
쌍용자동차 김정우 지부장
쌍용자동차 김정우 지부장
‘기저귀’값을 보태기위해 ‘기저귀’ 통장을 만들고, 아픈 곳에 착 달라붙어 통증을 조금은 시원하게 해주는 파스가 되어주길 원하며 ‘파스’ 통장을 만들어 서로 위로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쌍용자동차 가족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박근혜정부를 향해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30m 철탑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여오다 건강악화로 병원으로 이송된 노동자가 있다.

또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단식을 마다하지 않고 대한문 앞을 지키는 김정우 지부장이 있고,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러나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노동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박근혜정부의 노동정책은?

작년 이맘 때 나는 대한문 앞 쌍차 해고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세워진 농성촌 앞을 지나면서도 천막 안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돌아오곤 했다.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마음으론 안타깝고 가슴 아팠으나 직접 알지 못하는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낯설고 괴리감이 있었던 것이다.
방화 이후 다시 지어진 대한문앞 농성장
방화 이후 다시 지어진 대한문앞 농성장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언니로부터 쌍차 비정규직 투쟁중인 활동가 서맹섭씨의 넷째아이가 곧 태어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월 90만원의 활동비로 생활하는데 곧 태어날 넷째아이를 맞이하는 마음이 기쁨 반 걱정 반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십시일반 작은 정성을 모아 기저귀값 이라도 보태보자고 ‘기저귀통장’을 만들었다며 함께 하자는 제안이었다. ‘기저귀통장’에 참여하게 되면서 낯설고 멀게 느껴졌던 쌍차 해고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친근한 이웃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기저귀통장’은 낯 설은 노동 현장 투쟁을 우리 이웃의 일로 여겨지게 만든 ‘소통’의 시작이 되었다.

처음 ‘기저귀 통장’을 제안한 이강희 씨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김경아(질문):‘기저귀통장’을 만든 게 된 계기는?

이강희(답변):‘디어 한나’라는 영화를 본 날, 21번째 쌍차 노동자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영화에서 가족 폭력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결국 어떤 계기로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지만 폭력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평생이어 질 것이라 여겨졌고 쌍차 해고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 맘속의 트라우마도 마찬가지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몇 지인들과 얘기 끝에 쌍차 해고자 천막 농성장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햇살이 따스한 어느 봄날, 김밥, 과일, 다과를 각자 준비 하여 소풍가듯이 농성장을 찾았고 그곳에서 한윤수, 복기성, 서맹섭 세 분의 쌍차 비정규직 투쟁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활동가 서맹섭씨의 넷째가 곧 태어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날 만남과 ‘기저귀통장’을 제안하는 이강희 씨의 글을 소개한다
<전국노동자신문>을 만들던 당시 신문 한 꼭지에는 힘든 상황에서도 피어나던 '웃음꽃'을 소재로 한 재미난 이야기들이 매주 하나 씩 소개되었다. 그 가운데 '호루라기'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단칸방 신세에 잔업, 철야작업을 면할 수 없던 한 노동자는 불가피하게 대낮에 아내와의 '사랑만들기'를 하고 싶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들에게 대여섯 살 아들이 하나 있는 것이었다. 궁여지책으로 고안해낸 방법이 바로 '호루라기'다. 아들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며 이렇게 말한다. "놀이터에서 잠시 놀다 오너라. 대문 들어서기 전에 꼭 이 호루라기를 삐~삐~ 불거라. 꼭!"
그렇게 아들의 호루라기 소리는 '이제 그만 사랑만들기를 끝내라'는 신호가 된다.

당시 노동자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취재하다 보면 이렇게 서글퍼도 피어나는 웃음꽃이 있었고 그렇게 웃고나면 또 한 시름 조금쯤 덜어지는 여유가 생기곤 했다.

월요일 김밥 싸들고 방문한 송택 출장소 옆 쌍용자동차 비정규지회 4인방 텐트농성장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들었던 사연 하나가 이 '호루라기'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 기나긴 농성에 각종 집회에 싸움에 이들이 가족 얼굴을 얼마나 자주 보겠는가.
헌데 그 중 한 분이 모처럼 집에 가 아내와 '사랑만들기'를 했더니 바로 아이가 생겼단다. 10살 5살 1살 그리고 그렇게 생긴 아이가 5월 경 태어난단다. 동료들이 평소에 뭘 먹느냐, 비결이 뭐냐 묻길래 이렇게 답해줬단다.
"발가락에 힘 한 번 줬더니 애가 생기더라" 그 소리에 우리 모두 깔깔 웃었다...

이 분 한 달 수입이 90여만원. 왜 대책도 없이 애를 그리 많이 낳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얘기를 하며 귓볼이 빨개지도록 웃는 그의 모습이 또 아이가 태어날 때를 꼽는 아빠의 수줍은 목소리가 봄볕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만큼이나 아름답더라.

그날 함께 간 페친들과 뭔가 그 아이의 탄생을 축복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것이 '기저귀 통장' 이다. 매달 십시일반 통장에 돈을 모아 '기저귀 통장'에 보내주는 방식이 어떨까 싶다.

혹 다정한 페친들 중에 마음이 동하시는 분 계시면 메시지를 보내시거나 댓글 달아주시기를... 그러면 정말 나는 중력을 이기고 하늘을 날고 있을 거 같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저귀 통장’에서 매달 15만원씩 서맹섭씨의 아이들 기저귀 값이 보내어진다. ‘기저귀 통장’은 작은 연대의 한 방법이지만 통장에 돈을 보내면서 해고 노동자나 비정규직 투쟁중인 노동자들과의 소통의 고리가 된다. 낯설었던 노동활동가들에게 관심이 가고 아프진 않은지 다치진 않았는지 한 번 두 번 농성장을 찾아가게 되기도 한다. 이후 후원금이 조금씩 늘어 ‘파스통장’도 만들어졌다.

‘파스통장’을 제안하는 이강희씨의 글도 소개한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5월5일 어린이날 '와락'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와락'은 대량 해고, 파업, 경찰의 끔찍한 폭력진압 등으로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치유 프로그램을 위해 정혜신 박사가 주변의 뜻을 모아 세운 상담센터 겸 아이들의 놀이공간입니다. 당시 해고와 폭행을 경험하면서 따라온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하는 노동자들이 속출하는 마당에도 회사도 정부도... 해결할 의지가 없는 가운데 뜻 있는 따뜻한 이들이 만든 그야말로 마음이 모인 공간입니다.

와락에 들어서니 아이들과 아낙들이 모여 돈까스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는 3일 뒤 어버이날을 위해 와글와글 모여 빨간 리본 카네이션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동행한 페친과 함께 페이스 페인팅 물감을 꺼내 놓고 아이들 얼굴에 손등에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아이들의 모델이 되어 얼굴이며 팔을 내어주고 있게 되었어요. 많은 아이들이 있었지만 유독 한 남자 아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뭐 그려줄까?" 하고 물어도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 우리 곁을 잠시 맴돌다 사라진 아이였습니다. 처음엔 페이스 페인팅에 관심이 없나보다 했는데 아이들과 밖에 나가서 한참 놀다가 들어오니 "응응응..." 하면서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그때 알았어요. 나이에 비해 언어표현이 잘 안 되는 아이라는 것을. 페이스 페인팅에 미련이 남은 아이들이 있어서 다시 그림그리기 판을 벌였는데 바로 그 아이가 제가 쥐고 있던 붓을 가리키며 다시 "응응응..." 합니다. 아, 그림을 그리고 싶은 모양이구나. 붓을 쥐어 주었어요. 물감을 푸욱 찍어내더니 자기 손등에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사실 그림이라기 보단 그냥 색칠을 하고 있었어요. 어떤 마음 먹은 형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색 위에 색을 덧입히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카랑카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민중이 그만해!! 이제 집에 가자" 아이는 계속 더 그리고 싶어 했고 저도 그렇게 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너무나 피곤해 보였고 그 목소리에서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간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손등에 잔뜩 그린 그림을 닦아주는 것조차 그녀에게는 힘든 일거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녀, 민중이 엄마는 사실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2003년 쌍용자동차 사내하청에 입사하여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맡아 하다가 2009년 정리해고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남편은 홀로 계신 어머니, 사랑하는 아내, 딸, 아들에게 월급(생활비)을 한 번도 갖다 주지 못했고 집 담보대출, 보험해약, 적금해지도 모자라 친지들에게 진 빚이 6천 만원을 넘어버렸습니다. 3년이 흐른 지금도 남편은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올 겨울은 천막농성으로 요즘은 평택역 앞 서명운동으로 평일을 보내고 주말엔 간간이 공사현장 일을 하러 나갑니다.

남편의 이름은 회사의 블랙리스트에 올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회사 상황이 어렵다며 자신들을 정리해고 한 자리에 버젓이 다른 사람들을 채용하고 심지어는 고등학생을 아르바이트나 실습생으로 써서 한 학생의 손가락이 절단된 일까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이렇게 소모품처럼 사용되다가 버려져서는 아이들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습니다.

이런 남편의 뜻을 존중하는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바로 그녀입니다. 남편 대신 생계를 해결해야 하다보니 그녀는 요즘 몹시 피곤하고 허리도 아픕니다. 그림 그리고 싶어하는 아이를 억지로라도 집에 데리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건 아마도 바로 그녀의 아픈 허리를 빨리 누이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그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저귀 통장'을 만들면서 가까워진 페친들과 의논을 해보았습니다. 고관절 앓고 있는 딸에, 언어치료가 필요한 아들, 분명히 빠듯할 생계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어려우면 또 한 푼 보태는 남편의 오지랖 등을 따져보다가 이번엔 '파스 통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새발의 피'일지언정 매달 적은 금액이라도 마음을 보내주면 그녀에게 조금쯤 격려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녀 허리에 착 달라붙어 통증을 조금쯤 시원하게 해주는 그런 통장이 되지 않을까요?
그녀의 파스가 되어주고 싶으신 마음 따뜻한 페친들 계시면 댓글이든 메세지든 남겨 주세요. 계좌 번호 보내드릴께요.(이하 생략)

‘파스통장’이 만들어지고 얼마 뒤 그녀의 남편은 쌍차 국정감사를 요구하며 평택 쌍차 본사 앞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 오른다. 그가 바로 고압의 송전탑 위에서 한상균, 문기주씨와 함께 투쟁중인 활동가 복기성씨다. ‘기저귀통장’과 마찬가지로 ‘파스통장’에도 매월 15만원씩이 입급 된다. 작은 연대는 이렇게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주 대한문 앞 쌍차 농성촌을 철거하려는 중구청의 시도가 시민들의 반대항의로 미뤄진 며칠 후 비가 오기 시작하는 흐린 저녁 농성촌을 방문하여 쌍차 해고자인 김정우지부장을 만났다.

철거 시도 시 몸싸움이 일어 다치신 시민 두 분은 현재 병원에 입원중이고 당분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신다. 평택 쌍차 철탑 위 투쟁 중이던 문기주 씨도 팔이 마비 증세를 보여 최근 병원으로 이송되셨다.

 김정우 지부장이 건네준 토종닭인 오계의 토종란
김정우 지부장이 건네준 토종닭인 오계의 토종란
 
어려운 상황임에도 김정우지부장은 평안한 표정으로 반가이 맞아 주셨다. 화재 후 다시 세운 농성장 천막의 모습을 둘러보니 작지만 공고한 의지만큼 더 단단한 느낌이 들어 다소 안심이 되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일어서려는데 토종닭인 오계의 토종란 알을 귀한 것이니 나눠먹자며 주머니에 굳이 넣어 주시기에 그저 와락 안아드렸다. 서로 나누는 따뜻한 마음을 받으며 오랫동안 함께 가자고 마음 먹는다. 함!께!살!자!

김경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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