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채호 선생 기리는 단재상 시상식 열린다
  • 입력날짜 2012-12-06 05: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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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상자로 채의진·임재경 선정...6일 혜화동 소극장에서
구한말과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신채호 선생을 기리는 ‘단재상’ 시상식이 기념사업회 차원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사)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 김원웅)는 오는 6일 오전 10시 종로구 혜화동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소극장에서 제1회 단재상 시상식을 연다고 밝혔다.
 

단재 민족상 수상자, 채의진-임재경 수상 이유는....

단재 민족상에는 채의진 전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회장이, 단재 언론상에는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이 선정됐다.

민족상을 받는 채의진 전 회장은 1949년 12월 24일 경북 문경 석달마을에서 벌어진 국군에 의한 무차별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기적 같이 살아남은 후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피해자에 대한 신원에 한 평생을 바친 공로가 인정됐다.

언론상을 받는 임재경 전 부사장은 평생 언론인으로 살면서 민주회복과 역사 바로 세우기,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한 점 등이 단재 선생의 정신을 실천한 것으로 평가됐다.

기념사업회는 “근현대사의 진실규명과 역사정의 실천에 헌신한 인사를 선정, 단재상을 수여한다”며 “단재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뜻 깊은 자리에 많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 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심사위원에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과 김승자 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등이 참여했으며, 수상자에게는 상금 300만원과 청동 삼족오 상패가 수여된다.

다음은 단재상 수상자 공적조서다

단재 민족상 수상자 채의진

채의진선생은 한국전쟁직전 ‘문경양민학살사건’으로 불리는 양민 학살 현장인 ‘문경 석달마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명이며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다.

1949년 12월 24일 경북 문경 석달마을에 진입한 국군이 민가 24채를 불 태우고 어린이 부녀자 노인을 가리지 않고 마을 주민 127명에게 ‘공비에게 음식을 제공했다는’ 입증되지 않은 구실로 무차별 총격을 가해 86명이 즉사했다. 채의진 선생은 당시 13살 어린 몸으로 형과 사촌동생의 시신 밑에 깔려있어 확인사살까지 자행한 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당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몇 명 중의 한 명인 채의진 선생은 이후 어렵사리 학교를 마친 후 영어선생이 되었으나 1986년 교사직을 사퇴하고 한국전쟁전쟁전후민간인학살 피해자에 대한 신원에 한 평생을 바침.

주요 활동
- 1960년 4.19혁명 직후인 5월 27일 「석달동양민집단학살」에 대하여 신원(伸寃)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국회와 정부당국에 제출. 하지만 이듬해인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좌절.
- 1994년 문경석달동 양민 집단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청원 제출.
- 2000년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 전국 유족회 결성 및 회장에 선출.
- 2003년 한국전쟁후민간인희생자진상규명법(대표발의:김원웅) 국회 상정. 한나라당 반대로 부결.
- 2005년 진실과화해를위한특별법 입법
- 2008년 7월 10일 채의진외 3인이 서울지방법원에 국가 배상소송 제기, 원고패소 판결(2009.2.11)
- 2009년 2월 16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 원고패소 판결(2009.7.31)
- 2009년 8월 6일 대법원상고 원고 승소판결(2011.9.8)
- 2012년 5월 4일 서울고등법원 국가배상 확정판결(최초로 국가배상판결을 쟁취하여, 100만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의미있는 판례)

채의진 선생의 주요 이력과 경력

성 명 : 채의진(蔡義鎭) (인천 蔡씨, 1938년생)
출 생 지 : 경상북도
본 적 : 경북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 236번지
직 업 : 서각가(書刻家)
가입단체 :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진상규명전국유족회

학력
1953.3.26 - 김룡초등학교 6년 졸업
1956.3.23 - 상주중학교 3년 졸업
1959.3.26 - 상주고등학교 3년 졸업
1961.12.23 - 서울문리사범대학 영어과 2년 졸업
1974.2.26 - 명지대학 외국어 교육학과 4년 졸업

경력
1965.4.20~1968.3.5 초등학교 교사 3년
1968.3.6~1986.9.18 중고등학교 영어교사 18년

상력
1980.12.5 - 국민훈장석류장
1993.11.27- 세계평화교육자상
2008.5.21 - 민족평화상

공로상(패), 감사장(패)

- 필리핀 초대대통령 마카파갈(Macapagal) 기념사업회(1989.7.22)
- 필리핀 마닐라 한인회(1989.7.23)
-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 (사)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기타 각계각층으로부터 50여회 공로상(패), 감사장(패)를 받음.

사회활동
- 미국 네바다 주지사 초청 서도예전 작품 10점 출품(1989.4.25~30)
- 필리핀 초대 대통령 마카파갈 기념사업최초대전참가(1989.7.17~22)
- 93한중서화교류전 참가(1993.6.21~25/북경중국미술관)
- 평양근교「6.15사료공장」현판식 및 기공식 참가. 자작현판 기증(날짜 미상)
- 대한민국 통일예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 한국미술제 심사위원 역임
- 한국문화예술종합대상전 심사위원 역임
- 중국 길림서화함수대학교 명예교수
-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고문
- (사)동방문화진흥회 명예 이사
-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자금마련 개인전(2004.7.22~24/운현궁 양관)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수립 90주년 기념 「임시정부가 꿈군 나라」 전국순회(서울,부산,광주) 작품개인전 작품 60여점 기증
- 시사주간지「시사IN」 창립기금마련 작품 40점 기증
- 고구려 역사 문화 보존회 현판 제작, 기증
-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심사워원회 현판 제작, 기증

단재 언론상 수상자 임재경

임재경 선생은 한겨레신문사의 부사장을 역임한 언론인이며, 송건호 선생을 기리는 청암언론재단의 이사이다.

임재경 선생은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1961년 봄 ‘조선일보’의 수습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입문하였으며 80년 7월 전두환 일당이 날조한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 연루되어 ‘한국일보’ 논설위원직을 파면당하였고 1988년 5월 15일 영등포 양평동 막사 사옥의 낡은 윤전기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한겨레신문을 창간한 주역으로 당시 선생의 나이가 52살 이였고 직책은 편집인 겸 논설주간이었다.

평생을 언론인으로 살아온 임재경 선생은 권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당하는 상황 속에서 뜻있는 사회원로들과 함께 민주 회복을 위한 입장을 표명하였고, ‘을사늑약’ 을 ‘을사조약‘으로 고치려는 등 정부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정면 대처하여 바른 역사정립에도 진력하여 왔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신장,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동에 적극 헌신해 오는 등 단재 선생의 정신을 일관되게 실천해 오셨다.

임재경 선생의 주요 이력 및 경력

성 명 : 임재경(豊川 임씨, 1936년생)
출 생 지 : 강원도 김화(金化) 출생
본 적 : 서울 용산구 청파동 3가 132-19
직 업 : 언론기관단체인 전 신문기자
직장주소 : (110-320) 서울 종로구 낙원동 중구오피스텔 1117호
직장전화 : 02-762-9163
가입단체 : 민주언론운동협의회, 화해와전진포럼

학력
1952 - 1955 군산고등학교
1955 - 1960 서울대학교 영문학
1971 - 1972 프랑스 파리 제1대학교 경제사
1983 - 1984 미국 하버드대학교 국제정치
1992 - 1993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유럽현대사

경력
1960. - 1973.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1974. - 1980. 한국일보 논설위원
1984. - 1987. 창작과 비평사 편집고문
1974.11 함석헌,천관우 등이 주동한 ‘민주회복국민선언’ 참여
1980.5 - 전두환 일당의 정권탈취야욕을 규탄하는 ‘지식인 134명 시국선언’ 참여
1980.7 - 전두환 일당이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의 이른바 ‘김대중 과도내각’의 경제담당으로 적시되어 한국일보사 논설위원직에서 파면 됨과 동시에 투옥
1984.12 - 해직언론인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주언론운동협의회결성, 공동대표. 부정기 정론지 <말> 발간
2003-7 중앙선거관리위원.
1986. - 1987.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 이사장
1987. - 1988.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1987. - 1988.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공동대표
1987.6 군정종식을 위한 <국민회의> 공동대표로서 6월 민주항쟁에 참여
1992-93 동서독 통일후 구 동독지역을 순회하며 분단시대의 독일 현대사와 통일과정을 관찰. 현대 ‘독일분단과 독일의 선택’을 주제로 삼는 저술을 준비 중임
1988.03 - 1989.04 한겨레신문 편집인 겸 논설주간
1989.04 - 1991.03 한겨레신문 부사장
1991.06 - 1993.04 한겨레신문 논설고문
1993.05 - 1997.04 한겨레신문 경영자문위원
1994.01 - 2003.03 창작과비평사 편집자문위원 비상근이사
1998.12 - 민주개혁국민연합 고문
2001.05 - 화해와전진포럼 상임운영위원
2002.01 - 청암언론문화재단 이사
2003.05 - 2007.12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저 서
- 상황과 비판정신, 창작과비평사,1983
- 한국과 미국(공저), 실천문학사,1985
- 저강도전쟁-미국의 새로운 제3세계전략(공저), 민중사,1987
- 반핵, 창작과비평사,1988
- 내마음 우러나는 소리로 살고 싶었네(공저),1990

논 문
- Economic Development and Political Development is Competative or Compatible?, 미국 하버드대,1984
- 한국현대사에 있어서의 유신체제,1986
- 통일 이후의 동부독일,1991
- 문민개혁 단상,1994

하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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