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쿠르트 여사님 덕분에 저는 든든합니다”
  • 입력날짜 2023-06-27 13: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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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에서 45년째 거주 중인 상담사 이수진 씨가 버스요금을 빌려주겠다던 야쿠르트 여사님(김정덕)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습니다.

1분 1초가 아까운 출근 시간, 지각을 면하기 위해 서두르며 뛰는 것이 습관이 된 지 오래입니다.

몇 년 전 출근길, 등 뒤에서 오는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숨 고르며 도착한 버스를 타기 위해 문 앞에 서서야 교통카드가 들어있는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돌리는 찰나 늘 정류장 앞에 있는 야쿠르트 여사님이 “왜 안타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카드를 두고 나왔다고 대답하자 “내가 돈 빌려줄게, 자 어서 타세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순간적으로 주시는 돈을 덥석 받아 들고 버스에 오르고 싶었지만, 교통카드만 없는 게 아니라 카드가 든 휴대전화를 두고 와서 어쩔 수 없이 마음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집으로 향하면서 그냥 좋은 기분으로 몽글몽글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과의 인연은 십 년이 훨씬 넘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 몇 달 정도 야쿠르트를 배달해주신 적이 있을 뿐 저는 그분의 단골도 아니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마주치며 살짝 눈인사만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 곤경에 처한 저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의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날의 일기장을 찾아보니 ‘우리 동네 인심이 이 정도다! 홍제동, 참 좋은 동네다’로 마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를 아껴주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의 도움은 예상할 수 있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여사님처럼 얼굴만 알고 지내는 먼 이웃에게 받은 호의가 저로서는 뜻밖이었습니다.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쁘고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이 사는 것 같지만,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당할 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랑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날 아침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서의 일이 이렇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걸 보니, 여사님으로부터 실제로 돈 한 푼 받지 않았지만 제 마음에는 버스요금의 수백 배쯤 예금된 것 같습니다. 그분 덕분에

야쿠르트 여사님 덕분에 저는 든든합니다. 저에게 든든한 사람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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